2026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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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피해 숨어든 백운면 교우촌의 중심, 쉬는 신자 한 명 없던 신심 깊은 공동체

[리길재 기자의 공소를 가다] 38. 전주교구 진안본당 두원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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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진안본당 두원공소는 1897년 설립돼 2026년 올해로 129년 된 공소이다. 두원공소 전경.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는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전라도 지역 선교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19세기 말까지 전라북도(현 전주교구 관할 구역)에 5개 본당을 신설했다. 이들 본당은 전라북도와 충남·경남 일부 지역을 포함해 교우 1만 3600여 명과 169개 공소를 사목했다.

이 시기 이 지역에 처음으로 설립된 본당은 1889년 봄 전주(현 전동)와 금구(완주) 배재다. 초대 전주본당 주임 보두네 신부는 1891년 6월 교우들의 헌신과 전주 지역민의 협조로 지금의 전동성당 터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 가톨릭교회 첫 순교자 복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이 전주 남문 밖 형장에서 치명한 지 꼭 100년 만의 일이었다. 초대 금구 배재본당 주임 베르모렐 신부는 1895년 수류로 본당을 옮겼다.

1891년 10월 고산 차독배기 본당을 설립했다. 제2대 주임 비에모 신부는 본당을 되재로 옮기고 1895년 새 성당을 봉헌했다. 되재성당은 한강 이남에서 봉헌된 첫 번째 성당 건축물로 서울의 중림동 약현성당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지어진 두 번째 성당이었다. 이어 1897년 나바위본당, 1900년 진안 어은동본당이 설립됐다. 이처럼 진안본당은 전라북도 지역 복음화에 헌신해온 뿌리 깊은 신앙 공동체이다.

전주교구 진안본당 두원공소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 두원길 58-4(반송리 440)에 자리하고 있다. 백운면은 진안군 최남단에 위치한 면이다. 동쪽과 남쪽으로는 장수군, 서쪽으로는 성수면, 서북쪽으로 마령면, 남서쪽으로는 임실, 북쪽으로는 진안읍과 접하고 있다.

백운면은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이 있는 지역으로 ‘데미’는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천상데미’라 불렀고, 천상데미에 샘이 있어 ‘데미샘’이라 했다.

천상데미를 품고 있는 뫼가 성수산이다. 성수산 상이암은 9마리 용이 여의주를 얻기 위해 달려드는 형상인 구룡쟁주(九龍爭珠) 명당이어서 고려와 조선을 창업한 왕건과 이성계가 이곳을 찾아와 하늘의 뜻을 얻고자 기도했다고 한다. 또 고려말 충신 최양이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에 반대해 3년간 은둔했다. 만육 최양(1351~1424)은 정몽주의 조카로 이성계의 남원 운봉 황산대첩 때 정몽주와 함께 종사관으로 참전했었다.

 
두원공소를 찾는 이들을 반겨주는 성모상.


화전 일구고 옹기 구우며 지킨 믿음

두 개국 왕의 기도처인 상이암 아래 골짜기에는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가톨릭 교우촌이 있다. 바로 성수리 수철마을 성수공소이다. 백운면 두원리에서 주암동 골짜기로 들어서서 능선을 넘으면 바로 상이암이 나온다. 신암리에서 지장재 고갯길을 넘어 마주하는 곳도 상이암이다. 이처럼 박해 시기 신앙 선조들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이 상이암 골짜기를 넘나들며 신앙생활을 했다.

백운면에는 두원(반송)공소뿐 아니라 억이재(오계치)·고중대·예드림(고림하)·상이암·느랏(유동)·주암동·동창 교우촌이 흩어져 있었다. 백운면 교우촌의 중심이 두원공소였다. 조선 왕조 치하 박해기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때에 충청도 교우들이 백운면 일대로 숨어들어와 교우촌을 이룬 것이다.

반송리(盤松里)에는 400여 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이 소나무 모양이 소반을 닮았다 해서 마을 이름을 ‘반송’이라 했다. 공소가 자리한 두원마을에도 조선 광해군 시기 1610년께 심어진 높이 22m, 둘레 6.2m의 느티나무가 있다. 주민들은 지금까지 상처 하나 없이 400년이 넘도록 생명을 이어온 이 느티나무를 마을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다. 두원마을 남쪽 골짜기 기슭 감나무골 구릉과 인삼밭 일대에 옹기 가마터가 있다. 두원공소 교우들이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연명했음을 알 수 있다.

 
두원공소 제대. 제대 뒤편 벽이 갈라져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간직해온 두원공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교우 수 10년 새 38명에서 113명으로

두원공소는 1897년 9월 초대 전주본당 주임 보두네 신부에 의해 설립됐다. 같은 시기 주천리·덜먹이·귀동·반월리·느달·안널틔 공소가 설립됐다. 두원공소 설립 당시 교우 수는 38명이었다.

보두네 신부는 1897년 제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에게 “제가 관할하고 있는 모든 군 가운데 교우 수나 세례자 수에서 으뜸을 차지하는 곳은 진안입니다. 저의 사제 생활 초기인 1886년에는 350명이던 교우가 오늘날에는 어린이와 어른을 합해 920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진안 교우들에게 두드러진 것은 교회의 본분을 실천하는 열심과 적어도 제가 알고 있는 한에는 제가 성사를 집행해 온 12년 동안 쉬는 신자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라고 보고했다.

1899~1900년 전주본당 교세 통계에 따르면 이 시기 13개 공소 가운데 쉬는 신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공소가 두원을 비롯해 안널틔· 양지·손실·오산리 5개소뿐이었다. 모두 진안 지역 공소이다. 10년 후 1910~1911년 신설 어은동본당 교세에는 두원공소 교우 수가 113명이나 됐다. 10년 새 약 3배로 늘었다.

두원공소는 1916년 전면 4칸, 측면 2칸의 기와 지붕 한옥 건물로 지어졌다. 초대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는 1918년 11월 21일 두원공소를 사목 방문했다. 주교는 쌀쌀한 겨울 날씨로 인해 감기에 걸린 채 장재동공소에서 40리 거리에 있는 두원공소로 가서 30명에게 성탄 판공 찰고를 주례했다.

 
두원공소 벽면에 장식된 십자가의 길 14처 성화.


설립 129년… 진안군 문화유산 지정

지금의 두원공소는 1957년 10월에 신축된 건물이다. 천장 대들보에는 ‘천주 강생 1957년 음력 10월 6일 상량’이라고 쓴 먹글(墨書)이 남아있다. 1977년 한들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됐을 때 백운면 두원공소와 백운공소가 한들본당 관할로 이적됐다. 1985년 1월 25일 한들본당이 폐쇄되자 다시 진안본당 관할 공소가 됐다. 1988년 8월 10일 마당에 성모상을 조성하고 담장을 설치했다. 이후 2006~2007년께 함석지붕을 강판으로 교체하고, 담장을 헐고 꽃나무 울타리를 조성했다. 현재 두원공소 교우 대부분은 진안성당에서 전례와 성사,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 공소 건물은 오랫동안 활용하지 않고 방치된 상태다. 개인 기도를 하기 위해 찾아오거나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회합 때 사용하고 있다. 2016년 12월 28일 진안군 문화유산 유형 제12호로 지정됐다.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하는 회합방.


제단 뒷벽 틈 갈라져 빛 새어들어

두원공소 입구에서는 성모상이 공소를 찾는 이들을 제일 먼저 맞이한다. 공소는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간직해온 전통 한옥이다. 외관 회벽은 곳곳이 뜯겨 있다. 스테인리스 출입문이 뜬금없다. 공소 내부는 더 처참하다. 회벽이 모두 떨어져 군데군데 흙벽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나무 바닥은 뒤틀려 삐걱거리고, 회중석을 무심하게 칠한 두꺼운 페인트 흔적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제단 뒷벽은 틈이 갈라져 빛이 새어든다. 나무 제대 위에는 촛대 2개와 빛바래고 먼지를 가득 먹은 두 성모상이 놓여 있다. 천장에는 서까래가 노출돼 있고, 제대 맞은 편 벽면에 십자가의 길 14처 성화가 장식돼 있다. 회합방은 제법 깔끔하게 단장돼 있다. 온화한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이다.

2026년 올해로 설립 129년이 된 두원공소는 투박하지만 단아한 새색시인 양 인상적이다. 설립 초기부터 쉬는 신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본당 신부가 주교에게 자랑할 만큼 신심 깊은 두원공소 교우들이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처럼 지금까지 늘 푸른 신앙의 나무를 생명력 강하게 이어가고 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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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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