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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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브뤼기에르 주교 발자취 안에서 조선 선교의 꿈 만나다

[바다의 별을 좇는 자 - 시암 부주교 조선 선교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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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 가톨릭평화신문 DB


서울대교구 용산본당의 브뤼기에르 주교 해상 경로 탐방기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 위치한 용산성당 

프랑스·중국 이어 이번에는 태국 등 아시아 지역 탐방 나서

방콕에 남아 있는 주교 사목지 순례·묵상하며 헌신 되새겨




서울대교구 용산성당(주임 황응천 신부)은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시성을 위한 현양에 있어 그 중심이요 심장이라 할 만큼 중요하고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용산성당 성직자 묘역에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가 있기 때문이다. 1835년 10월 20일 내몽골 마가자에서 선종한 브뤼기에르 주교는 그곳 마을 공동 묘지에 안장됐다가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31년 10월 15일 이곳 용산 성직자 묘역으로 이장했다.

이후 용산본당 교우들은 매일 동이 트는 새벽부터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를 찾아와 고인의 영원한 안식과 교회와 이 세상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더불어 용산본당은 매일 오전 미사 후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에서 시복 시성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다.

용산본당은 지난해부터 브뤼기에르 주교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하면서 그분의 삶의 흔적과 의미, 영성을 체현하고 있다. 이 순례길은 2025년 2월 프랑스, 6월 중국을 거쳐 올해 10월 1일부터 6일까지 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에 이르는 해상 경로로 이어졌다. 이번 순례는 마카오에서 복안, 산서대목구청이 있던 기현 구급촌까지의 중국 내륙 순례로 마무리됐다.

가톨릭평화신문은 기획 특집 ‘바다의 별을 좇는 자- 시암 부주교 조선 선교사가 되다’란 제목으로 2회에 걸쳐 용산본당 순례자들의 브뤼기에르 주교 해상 경로 탐방기를 연재한다.

 
용산본당 순례자들이 10월 2일 방콕 성모 승천 주교좌 대성당에서 195년 만에 조선 선교사가 된 시암대목구 브뤼기에르 부주교와의 만남을 이루었다.


순례는 여행이 아니다. 여행이 감각의 체험이라면 순례는 영의 체험이다. 여행이 오감(五感)의 즐거움을 만족하게 한다면 순례는 영적 허기를 채워준다. 여행이 미지의 세상을 향한다면, 순례는 내 안의 빛을 찾아 영의 깊숙한 곳으로 향한다. 그래서 순례는 여행과 완전히 격이 다른 내적 정화를 체험하는 ‘영의 여정’이다. 모든 순례자는 서로 다르게 체험하지만 하나같이 순례 여정에서 감정이 순화되고 하느님과 삶의 조화를 이루는 영의 사람으로 조명되어 변화된다.

마카오에서 시암 선교사로 방콕에 가고, 시암의 부주교가 된 후 조선 선교를 위해 방콕을 떠나 페낭, 마닐라를 거쳐 마카오로 가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해상 여정을 탐방하기 위해 길을 나선 용산본당 30명의 순례자도 6일간의 참 순례를 체험했다. 순례자 모두 브뤼기에르 주교의 전구로 하느님과 하나 되는 크나큰 자비를 체험했다.

연휴가 시작되는 10월 1일 새벽 인천공항은 인파로 붐볐다. 수많은 낯선 사람 속에서도 용산본당 순례자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모두가 자주색 스카프를 동여맨 가방을 들었고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세례명을 부르며 수다를 즐기고 있었다.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시성 기도와 순례자의 기도를 각자 바친 후 방콕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기도로 시작하는 순례는 기쁨을 안겨준다. 왠지 거룩한 사람이 됐다는 느낌이랄까! 오직 하느님께만 온전한 의미로 사용되는 형용사 ‘거룩하다’를 인간에게 표현할 때는 그 인격이 하느님께 동화돼 그분께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거룩한 사람은 하느님의 생명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이다. 용산본당 순례자들은 벌써 기도를 통해 모든 여행자와 구별되는 거룩한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1827년 6월부터 1831년 2월까지 3년 8개월간 사목하며 사제를 양성했던 방콕 성모 승천 주교좌 대성당 전경. 지금의 주교좌 대성당은 태평양 전쟁 이후 새로 지어져 1980년대와 1990년대 두 차례 부분 개축을 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사목한 대성당

비행 6시간 만에 방콕에 도착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1826년 12월 11일 시암대목구 선교사로 임명돼 마카오를 떠나 6개월간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1827년 6월 3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방콕에 당도했다. 방콕은 습하고 더웠다. 지난 두 달여 간 연신 내린 비로 도시 곳곳이 물에 잠겨 있었다. 버스 통풍구에서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몽환의 은수처로 우리를 끌고 가는 듯 착각에 빠지게 했다.

첫 순례지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사목지인 성모 승천 대성당이었다. 방콕에는 차오프라야 강을 경계로 4개 성당이 있다. 강 동쪽에는 1675년 처음으로 설립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성당과 1786년에 설립된 묵주의 성모 성당, 1822년에 봉헌한 성모 승천 대성당이 있다. 강 서쪽에는 1769년 설립한 성 십자가 성당이 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방콕에 도착해 처음으로 찾은 곳이 바로 성모 승천 대성당이다. 그곳에 시암대목구장 플로랑 주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플로랑 주교는 1820년 주교좌 대성당 땅을 사들여 이듬해 벽돌로 새 성당을 지어 1822년 봉헌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1827년 6월 20일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랑글루아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성당을 “제법 예쁜 성당”으로 표현했다. 지금의 대성당은 태평양 전쟁 이후 지은 성당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 두 차례에 걸쳐 부분 수리를 했다. 1984년 5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19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사목 방문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목 방문한 방콕 성모 승천 주교좌 대성당 내부.


“조선 선교사로 파견해 주십시오”

성모 승천 대성당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사목지였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에서 신학교를 운영하고 본토인 사제를 양성했다. 그는 매일 4과목을 수업하고 격주로 성경을 강의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신학생들을 위해 시암어로 된 라틴어 문법책과 시암어-라틴어 사전을 펴냈다.

그는 성모 승천 대성당 주임 신부로 사목했다. 당시 방콕과 시암 왕국 곳곳에는 전쟁과 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베트남인·캄보디아인·라오스인·중국인·일본인들이 있었다. 시암인들뿐 아니라 이들 이방인 모두 주교의 선교와 사목 대상이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주일이면 방콕의 4개 성당을 돌며 미사를 주례하고 성사를 집전했다. 그는 1826년 6월부터 1827년 말까지 1년 6개월 동안 어린이 1600여 명에게 유아세례를 줬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성모 승천 대성당에서 조선 선교사의 꿈을 키웠다. 그는 매일 밤 플로랑 주교와 손을 맞잡고 조선 선교에 관해 대화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이 성당에서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와 교황청 포교성성에 조선 선교를 자원했다. 플로랑 주교 또한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선교를 희망하면 기꺼이 그를 조선으로 떠나보내겠다고 밝혔다.

레오 12세 교황은 1828년 2월 5일 브뤼기에르 주교를 시암대목구 부대목구장 주교로 임명했다. 브뤼기에르는 1829년 6월 29일 방콕 성 십자가 성당에서 플로랑 주교 주례로 주교품을 받았다. 그리고 1831년 2월 13일 조선으로 가기 위해 방콕의 성모 승천 대성당을 떠났다.

 
서울 용산본당 순례자들이 방콕 성모 승천 주교좌 대성당 소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주교의 흔적 찾아

용산본당 순례자들은 성모 승천 대성당 소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그리고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의 흔적이 배어있는 성모 승천 대성당을 조용히 순례하면서 기도하고 묵상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이곳에서 예수님처럼 시암인과 이방인들에게 참된 ‘일용할 양식’ 곧 ‘생명의 양식’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글로써, 말씀으로써, 성사로써 이 생명의 양식을 나눴다. 그러면서 이 생명의 빵 부스러기라도 나눠달라고 호소하던 조선인들에게 자신이 찾아갈 것을 약속했다.

용산본당 순례자들은 195년 만에 이곳 성모 승천 대성당에서 생명의 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조선으로 떠나는 브뤼기에르 주교를 만났다. 감격스럽고 거룩한 만남이다. 용산본당 주임 황응천 신부가 영해 주는 양형 성체가 마치 브뤼기에르 주교가 베푸는 성체성사처럼 다가왔다. 모두 울컥했다. 역시 마음을 열어야 제대로 보인다. 브뤼기에르 주교와의 방콕에서의 첫 만남은 이렇게 황홀하고 멋졌다. 그리고 순례자 모두를 ‘거룩한 사람’으로 변모케 하는 성스러운 만남이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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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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