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 씨가 그분의 천사였네요.”
얼마 전, 오랜만에 단골 소머리 국밥집에 갔다. 작고 허름하지만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인 동네 맛집이다. 식당 앞에서 허름한 차림새의 중년 남자가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낯선 이가 사준 따뜻한 밥 한 끼를 계기로 오랜 노숙자 생활을 청산했다는 글이 떠올랐다. 다음 순간, 나도 모르게 속에 있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저씨, 제가 국밥 한 그릇 사드릴게요.”
말해놓고는 아차 싶었지만, 아저씨는 묵묵히 따라 들어왔다. 어색할까 봐 일부러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 함께 들어와 따로 앉는 우리를 의아하게 보는 사장님에게 살짝 눈짓을 보냈다. 눈치 빠른 사장님은 고개를 푹 숙이고 먹는 아저씨에게 밥과 반찬, 국물까지 넉넉하게 다시 채워주었다. 식사를 마친 아저씨는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한마디를 건네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휴우, 얼마나 다행인가. 힘내서 새 삶을 살아보세요’ 같은 뻔한 말 할 필요 없이 깔끔하게 끝났으니 말이다. 덕분에 오후 내내 괜히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하며 다녔다. 그날 저녁에 만난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한 분은 나를 천사라고 했고 장난기 많은 일행은 저녁 내내 나를 ‘국밥 천사’라고 불렀다.
내가 감히 천사라니, 날개는커녕 후광조차 없는데! 천사(天使)는 글자 그대로 ‘하늘에서 보낸 심부름꾼’이라는 뜻이다. 라틴어 ‘angelus’에서 유래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의 ‘angel’과 구약성경 언어인 히브리어 ‘말라크(mal’akh)’도 전달자를 의미한다.
한편, 대부분의 종교에서 천사는 신의 뜻을 전하고, 인간을 돕거나 보호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천사란 하느님을 찬미하고 섬기고, 그분의 뜻과 계획을 수행하며, 인간을 보호해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영적 피조물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니 교리대로라면 낯선 이에게 국밥 한 그릇 대접했다고 감히 천사라고 불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친절을 주고받으면서 본인도 상대방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다면, 이 역시 작게나마 그분 사랑의 전달자 역할을 한 건 아닐까?
일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작은 천사들’을 만난다. 어제도 그랬다.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막차를 타야 하는데 환승역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 있었다. 마음은 급하지, 가방은 무겁지, 쩔쩔매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아래 있던 군인이 단숨에 뛰어 올라와 가방을 번쩍 들어 주었다. ‘군인 천사’가 나타난 것이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서야 지갑을 두고 온 걸 알고 당황했는데, 뒤따라 타던 승객이 선뜻 내 몫까지 내주었다. ‘버스 천사’를 만난 거다. 온통 무표정한 얼굴로 바쁘게 스치는 퇴근길,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어주던 아가씨는 ‘미소 천사’였다.
나도 이들처럼 누군가에게 ‘그날의 천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보내는 천사는 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다정한 눈길과 손길을 건네는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국밥 한 그릇 대접하길 정말 잘했다.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