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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 개구쟁이, 세상의 성인 되다

[내 친구 아쿠티스를 찾아서] (3) 밀라노 톰마세오 학교·레오 13세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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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톰마세오 학교

성인의 은사 모니카 체로니 수녀
동물·장난 좋아하던 소년으로 기억
소외된 친구 먼저 품던 성품 전해

 

아쿠티스 재학 당시 교장이자 종교 교사였던 모니카 체로니 수녀


“이 학교 전체가 카를로의 유해(reliquia)인 셈이지요!”


성 가롤로(카를로) 아쿠티스 시성 1주년에 시작한 순례 나흘째인 9월 10일, 성인이 여섯 살부터 열네 살까지 다녔던 이탈리아 밀라노의 톰마세오 학교를 방문했다. 마침 이날은 새 학기 개학 날이라, 어린 아쿠티스의 후배들이 등교해 있었다. 아쿠티스 재학 당시 교장이자 종교 교사였던 모니카 체로니 수녀는 학교에 남은 그의 흔적을 기자에게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기자의 어머니 정진(로사) 작가와 통역을 맡은 밀라노 한인본당 신자 이경진(가타리나)씨도 함께였다.

 
성 카를로 아쿠티스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보낸 이탈리아 밀라노 톰마세오 학교 복도.
 

벽장 속 개구쟁이 성인

“햇살처럼 밝고 잘 웃던 카를로는 8년 동안 이곳에서 지냈어요. 계단을 뛰어다니고 복도를 오가며 운동장에서 놀았죠. 아침 8시에 와서 오후 4시에 돌아갔고 학생 식당에서 점심도 먹었어요. 학교 어디에나 ‘카를로가 머물렀던 곳’이라는 표지판을 붙여도 될 정도랍니다.”

아쿠티스는 1997년 9월 밀라노 성 가롤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얼마 뒤 성 마르첼리나 수녀회가 운영하는 톰마세오 학교로 옮겼다.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이곳에서 졸업하고, 2005년 9월 예수회가 설립한 레오 13세 인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두 학교는 약 600m 떨어져 있다.

모니카 수녀는 “세계 각국에서 온 취재진을 만났는데, 한국인은 처음”이라며 ‘평범한 소년 아쿠티스’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특히 중학교 1학년 때 수학 교사가 학급일지에 기록한 장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카를로와 카를로, 로렌초가 수학 시간에 벽장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왁!’ 하고 소리쳤음.’

어느 날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학 교사가 들어왔는데, 학생 셋이 보이지 않았다. 카를로 아쿠티스와 카를로 인노첸티, 로렌초 팔리아르디였다. 반 친구들은 행방을 묻는 말에 입을 꼭 다물었다. 교장 선생님을 부르겠다며 교사가 일어서는 순간, 벽장에 숨어 있던 세 개구쟁이가 동시에 뛰쳐나왔다.

기자도 여덟 살쯤 본당 주일학교 시간에 벽장에 혼자 숨은 적이 있었다. 친구나 선생님이 찾으러 다가오면 뛰쳐나와 놀라게 할 생각이었지만, 존재감이 없어서였는지 아무도 찾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터덜터덜 나와 집으로 가야 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카를로와 달리 제 장난은 실패했었어요.”
 
카를로 아쿠티스와 마찬가지로 동물을 좋아하고 낙서를 즐겼던 기자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린 만화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모니카 수녀를 비롯한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공교롭게도 밀라노와 서울의 동갑내기 둘이 비슷한 장난을 꾸몄던 것이다. 성인과는 또 다른 공통점도 있었다. 호기심이 많고 동물을 좋아했으며 낙서도 즐겼다는 것.

모니카 수녀는 “카를로는 집에서 기르던 개와 고양이 사진에 말풍선을 붙여 만화를 만들며 친구들과 놀았다”고 전했다. 또 컴퓨터를 더 배우려고 고등학교 컴퓨터 교사를 찾아다녔는데, 그렇게 익힌 기술로 ‘세계 성체 기적’ 전시를 준비하고, 소속 본당 웹사이트 제작에도 참여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정 작가는 반갑다는 듯이 기자를 바라봤다.

“너도 어려서부터 동물과 곤충을 좋아해 만화로 자주 그렸었지. 생태 교육 전문가의 조수를 자처하며 온갖 산골을 다 찾아다니기도 했잖아.”

그러나 모니카 수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닮은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쿠티스는 반에서 겉돌던 친구인 안드레아를 진정한 친구로 받아들이고 친한 친구들 무리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고 했다. 나중에는 다른 친구들도 안드레아와 함께 놀기를 기다리게 됐다.

신앙생활에서도 차이가 컸다. 기자가 성당에 가기 싫어 종종 몰래 오락실이나 만화방으로 향하던 시절, 아쿠티스는 성체성사를 ‘하늘나라로 가는 고속도로’라고 부르며 미사와 성체조배를 소중히 여겼다. 이런 비유도 남겼다. “태양 아래에서는 피부가 그을지만, 성체 앞에서 우리는 성인이 됩니다! .” 어린 나이에 어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그렇다고 모니카 수녀를 비롯한 교사들이 그가 성인이 될 줄 짐작했던 것은 아니다. 아쿠티스는 묵주를 손에 들고 돌아다니거나 예수님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으며 신앙을 겉으로 드러내는 학생도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모니카 수녀는 그 모습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옆집의 성인’을 떠올렸다. 아쿠티스는 친구들에게 말 그대로 ‘옆자리의 성인’이었던 것이다.
“카를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성덕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에요. 오늘 학교가 개학하면서 580명이 등교했어요. 그 가운데 또 다른 카를로가 있을지도 모르죠. 기억해야 할 건 어른이 원하는 모습에 맞춰 아이들을 바라볼 게 아니라, 저마다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거예요.”


성인의 삶과 영성 고스란히 간직한 학교

인터뷰를 마치고 홍보 담당자 실비아 라비토씨 안내로 학교를 둘러봤다. 실비아씨도 아쿠티스와 학교를 같이 다녔지만, 그보다 네 살 위라 얼굴만 아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아쿠티스의 후배인 지금의 아이들이 성인에 관해 어떤 점을 궁금해하는지 들려줬다.

“공부는 잘했나요? 좋아하는 운동은 뭐였나요? 무슨 놀이를 좋아했나요? 이런 걸 물어봐요. 아이들답게 참 순수하죠.”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이 초등학교과 중학교 생활을 보낸 이탈리아 밀라노 톰마세오 학교 학생 식당 모습


이처럼 톰마세오 학교는 성인의 삶을 전하는 곳이 됐다. 학생 식당의 오래된 나무 의자는 기자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의자와 똑 닮아 있었다. 곧이어 중학교 교실에도 들어가 봤다. 아쿠티스가 3년 동안 여러 교실을 사용해 특정 교실을 짚을 순 없었지만, 구조와 칠판은 그대로라고 했다. 책상만 현대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창밖에는 아쿠티스가 뛰놀던 운동장이 보였다. 그때는 자갈밭이어서 아이들이 자주 넘어져 무릎을 다치곤 했단다.
톰마세오 학교에서는 학년 초와 학년 중, 학년 말에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성당 문 앞에는 강아지를 안고 있는 아쿠티스의 사진과 중학교 졸업증서·시험 결과표가 전시돼 있었다. 1991년 5월 3일 런던 출생, 2005년 6월 21일 졸업. 졸업시험 종합 평가는 두 번째로 높은 ‘우수(Distinto)’였다.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에게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이 보낸 편지
톰마세오 학교 성당 게시판. 성 카를로 아쿠티스의 중학교 졸업증서와 시험 결과표, 친구들의 추모글이 걸려 있다.

옆에 걸린 친구들의 추모글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너는 형제 같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은 친구였어. 또 어떤 이에게는 그저 반 친구였겠지만, 우리 모두에게 너는 아무도 잊지 못할 특별한 사람이었어. 사랑해, 카를로. 너의 친구들이.”

성당 안에는 아쿠티스의 초상화와 기도문이 있었다. “카를로 아쿠티스처럼 친근하고 미소 짓는 성인이 되게 하소서.” 실비아씨는 예전에 이곳에서 미사를 드릴 때 모니카 수녀가 기타를 치고 학생들이 성가를 불렀다고 회상했다. 물론 아쿠티스도 함께. 소년 아쿠티스가 친구들과 열심히 성가를 부르는 모습이 떠올랐다. ‘소년 성인은 그렇게 목청껏 주님을 찬양했겠지.’




레오 13세 고등학교 - 아쿠티스가 돌려받지 못한 시험지
낙태 토론 종교 수업에서도
미소 잃지 않고 신념 밝혀
선행은 선종 뒤에야 알려져

 
고등학교 종교 교사 파브리치오 차자씨.


생명의 가치를 말했던 고등학생

이후 곧장 그가 마지막으로 다녔던 레오 13세 인문 고등학교로 향했다. 1893년 레오 13세 교황의 주교 수품 50주년을 기념해 설립한 예수회 학교다. 2005년 9월 입학해 이듬해 9월 말까지, 아쿠티스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1년 남짓이었다. 밝고 명랑하면서도 신앙에 충실했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교사들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종교 교사 파브리치오 차자씨는 아쿠티스를 활달하고 잘 웃는 학생으로 기억했다. 특유의 혀 짧은 ‘R’ 발음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호기심이 많아 교탁 앞으로 다가와 자주 질문을 던지곤 했다고 한다.

그는 생명의 가치를 놓고 토론했던 종교 수업도 떠올렸다. 낙태 문제가 화제로 오르자 아쿠티스는 생명이 잉태된 순간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교회 가르침을 분명하게 밝혔다. 어른이 된 지금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신념을 선뜻 밝히지 못하는 기자에게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로부터도 20년이 흐른 오늘날의 세태에서는 잉태된 순간부터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는 말을 꺼내기가 더욱 쉽지 않아졌다.

차자씨가 말했다. “저는 그때 카를로를 지켜주고 싶었어요. 생각이 다른 친구들과 우정에 금이 가거나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하지만 카를로는 차분하게 자신의 신념을 설명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어요. 제가 기억하기로 다른 친구와 거칠게 다투는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아쿠티스는 무슨 일을 제안하든 “네!”라고 대답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차자씨와 반 학생들이 자원봉사 홍보 영상을 제작할 때였다. 학교에서 촬영을 마친 뒤 차자씨가 영상 편집을 걱정하자 카를로가 선뜻 나섰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영상 편집이랑 음악은 제가 맡을게요.”

그가 자신의 목소리까지 담아 완성한 영상은 2020년 시복을 앞두고 이탈리아 예수회 홈페이지에 ‘카를로의 눈으로(Con gli occhi di Carlo)’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아쿠티스는 당시 교목 사제였던 로베르토 가자니가 신부와 함께 학교 홈페이지에 자원봉사 안내·신청 공간을 만드는 일도 구상했다. 그러나 2006년 10월 12일 급성 백혈병으로 열다섯 살에 선종하면서 끝내 구체화하지 못했다.

“카를로에게 한마디를 전할 수 있다면 ‘고맙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카를로가 살아간 모습과 이후 시성 과정을 지켜보면서 성인들은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일상에서 우리 곁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요.”



 
아쿠티스 성인의 고등학교 수학 교사 마리아 카펠로씨


수학보다 진한 선행

수학 교사 마리아 카펠로씨에게도 아쿠티스는 잊을 수 없는 학생이다. 성이 알파벳 ‘A’로 시작해 출석을 부를 때마다 가장 먼저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키가 크고 활발했어요. 그런데 눈빛이 남달랐죠. 아주 깊고 성숙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어요.”

카펠로씨는 아쿠티스를 일주일에 세 시간씩 가르쳤다. 한 반에 24~25명이 있어 학생 한 명 한 명을 깊이 알기는 어려웠지만, 그에 관한 기억은 구체적이었다. “머리가 좋고 공부도 꽤 잘했어요. 그런데 수학은 연습이 좀더 필요했죠. 숙제를 검사하다 보면 가끔 안 해왔더라고요.”

기자도 학창 시절 수학을 유독 어려워해 ‘수포자(수학 포기자)’를 자처했던 터라 귀가 솔깃했다. 숙제하기 싫어 미루다가 빼먹기도 일쑤였다. 그런데 안 혼나려고 온갖 핑계를 만들어대던 기자와 달리, 숙제를 안 해온 이유를 물으면 아쿠티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다른 할 일이 있었어요.”

다른 학생들이라면 친구의 숙제를 베낄 수도 있었겠지만, 아쿠티스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했다. 정작 무슨 할 일이 그토록 바빴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카펠로씨는 아쿠티스가 학교 밖에서 봉사 활동과 여러 선행을 했다는 사실을 그가 선종한 뒤에야 알게 됐다. 친구들조차 잘 몰랐을 만큼 자신의 활동에 관해 말을 아꼈다고 한다.

그런 아쿠티스가 교사들에게는 질문이 많았다. 수업 전후로 찾아와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삶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물었다. 카펠로씨는 “그런 질문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면서도 “제 과목인 수학에 관해선 무슨 질문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웃었다.

그는 아쿠티스를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소년’이라고 평가했다. 선종 직전 자신의 고통을 교황과 교회를 위해 봉헌했다고 전해 들은 이야기도 꺼냈다. 20년 전 제자와의 기억을 회고하다 감정이 북받쳤는지 카펠로씨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쿠티스는 고등학교 1학년 말 수학에서 보충 평가 대상이 됐다. 이듬해 9월 다른 친구 두 명과 함께 재시험을 치렀고, 카펠로씨가 직접 채점했다. 시험은 잘 봤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시험지를 돌려주려던 날, 공교롭게도 수학 수업 시간에 새 학년 개학 미사가 봉헌됐다. 카펠로씨는 아쿠티스와 반 친구들을 데리고 학교 성당으로 향했다. 그날이 성인이 학교에 나온 마지막 날이었다. 얼마 뒤 병원에 입원한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못했다.

“끝내 시험지를 돌려주지 못했어요. 그래도 카를로와 함께 성당에 갔다는 사실이 제게는 위안이에요.”

인터뷰를 마치고 교사들과 그 성당에 들렀다. 화가인 예수회 필리포 카를로마뇨 신부가 그린 아쿠티스 성화가 있었다. 지난해 9월 25일, 시성 직후 개학 미사 때 처음 공개된 작품이었다. 그림 속 성인은 책상 위에 걸터앉아 미소 짓고 있고, 옆에는 그가 제작한 ‘세계 성체 기적’을 소개하는 웹사이트가 띄워진 컴퓨터 모니터가 놓여 있다. 책상 아래로 성인이 애덕으로 도운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상징하는 침낭이, 창문 너머로는 레오 13세 학교 전경이 보였다.
 
카를로 아쿠티스가 마지막 학창시절을 보낸 레오 13세 고등학교 성당을 찾은 정진 작가와 이학주 기자가 그의 성화 옆에서 은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이 기자, 정 작가, 베로니카 파레데스 수녀, 파브리치오 차자씨, 마리아 카펠로씨, 통역사 이경진씨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이 2005~2006년 지냈던 고등학교 교실. 키가 컸던 그는 뒷줄 가운데에 앉았다.


주님께서 주신 그대로

마지막으로 아쿠티스의 교실을 찾았다. 입구에는 ‘카를로 아쿠티스가 2005~2006년 이 교실에서 공부하고 생활했다’는 기념 명판이 걸려 있었다. 지금도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곳으로, 여느 교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공간이었다.
182㎝로 키가 컸던 아쿠티스는 다른 학생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뒷줄에 앉았다. 지난해 우연히 선물 받은 공식 전기를 읽고 아쿠티스의 ‘열렬한 팬’이 된 정 작가의 눈이 반짝였다.

“어디에 앉았었대요?” 어머니는 통역을 통해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창가 쪽인 거예요?” “창가 쪽은 아니고, 중간쯤이었대요.”

20년 사이 책상 배치가 달라져 정확히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기자와 어머니가 서 있는 곳이 아쿠티스가 실제로 공부했던 교실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조금 전까지 들었던 교사들의 증언이 떠올랐다. 활발하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때로는 수학 숙제를 빼먹기도 했던 소년. 그러나 누군가의 복사본이 아닌, 주님께서 지어주신 고유한 모습대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았던 성인. 그가 앉았다는 교실 뒷줄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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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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