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2일 첫 방한… 수도 공동체 찾고 주교단·남녀 장상들 만나
“어느 나이에나 두 손 펼친 채 살아가야… 늙어가는 법 배우길”
“수도자들의 고령화는 오히려 축복입니다. 우리 안에 소중한 선물로 간직된 지혜가 많기 때문입니다.”
세계 수도회들이 수도자 수 감소와 고령화라는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교황청 축성생활회와 사도생활단부(수도회부) 차관 티치아나 메를레티 수녀는 이같이 강조했다. 메를레티 수녀는 지난해 5월 레오 14세 교황에 의해 차관으로 임명돼 교황청 최초의 여성 장관인 시모나 브람빌라 수녀와 함께 수도회부를 이끌고 있다. 16일 서울대교구청 수도자실에서 만난 그는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며 한탄하는 데 머물지 말고 희망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메를레티 수녀는 수도자들이 노년에 몸이 약해지고 특별한 돌봄이 필요해지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늙어가는 법도 배워야 한다”며 “어느 나이에나 두 손을 펼친 채 살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노년이 돼서도 마음을 닫지 않고, 다른 사람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유지하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축성생활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에서 영감을 얻은 세 가지 성경적 이미지를 제시했다. 과거에 매여 바벨탑 이야기처럼 적대감·분열을 일으키는 야심 찬 계획에 몰두하는 이들을 언급했고, 느헤미야가 각 가문에 예루살렘 성벽의 일부를 맡겨 재건한 모습에서는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발견했다.
메를레티 수녀는 “축성생활자들도 저마다 고유한 은사(카리스마)를 발휘해 ‘성벽의 한 부분을 맡도록’ 부름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한 묵시록에서 용의 공격에도 아기를 낳는 여인을 언급하며 “교회와 봉헌생활 역시 시련 속에서도 계속 생명을 낳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용이 끝내 승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노달리타스의 실천 방법도 소개했다. 무언가를 계획할 때마다 ‘이 자리에 누가 빠져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신분과 지위보다 모두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메를레티 수녀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조직위원회 준비 현장에서도 사제와 수도자, 국내외 젊은이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확인했다”며 “잘될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메를레티 수녀는 10~22일 교황청 수도회부 차관보 아이토르 히메네스 에차베 신부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여러 수도 공동체를 찾고 주교단과 남녀 수도회 장상들과 만나는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17일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에서 남녀 수도자들에게 강연하기도 했다. 이번 방한은 2024년 한국 주교단이 사도좌 정기 방문 당시 수도회부를 찾아 초청한 데서 비롯됐다. 2025년 정기 희년 일정 등으로 미뤄졌다가 올해 성사됐다.
첫 방한인 메를레티 수녀는 순교자들에게 뿌리내린 신앙과 환대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15일 경기 파주 임진강·비무장지대(DMZ)를 찾고는 “강은 본래 물이 흘러가는 곳이어서 강 하나가 두 나라를 가르는 경계라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고 말했다. 또 의정부교구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심순화(가타리나) 작가의 ‘한반도 평화의 성모자화’를 보며 남북 간 대화가 활발히 이뤄지기를 성모님께 청했다. 도라산역에서는 “다음 열차가 곧 출발할 듯 잘 관리된 모습에서 희망을 느꼈다”고 했다.
한국 수도자들의 국제적 역할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이미자·김영미 수녀가 각각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선교 수녀회와 성 바오로딸 수도회 총원장으로 선출된 사례를 언급했다. 메를레티 수녀는 “보편교회에서 한국 수도자들의 존재감이 분명히 느껴진다”며 한국 수도자들의 의지와 끈기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1959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메를레티 수녀는 가난한 이들의 프란치스코 수녀회에 입회해 1986년 첫서원을 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에서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4~2013년 소속 수도회 총원장을 지냈다. 이어 교황청립 안토니오대학교 교회법 교수와 세계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UISG) 교회법 전문가로 활동하다 지난해 5월 22일 교황청 수도회부 차관으로 임명됐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