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오래 있으면 한국의 뭐가 제일 그리우세요?”
김치, 떡볶이, 사우나, 총알 배달… 그 목록은 끝이 없겠지만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단연 산이다. 특히 산은커녕 나라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고, 당구대처럼 편편한 네덜란드에서 몇 달을 지내다 보면 한국의 산이 몸서리치게 그립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산에 다녔다. 딸 셋 중 언니들은 엄마 취향대로 고전무용 등을 배웠고 셋째인 나는 ‘산쟁이’ 아버지를 따라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산에 올랐다. 산에 가면 너무 좋았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노는 것도 그렇지만, 산에서 만나는 어른들이 “장하다, 씩씩하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먹을 것까지 챙겨주셨기 때문이다. 그때 받은 ‘내가 예쁘거나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라는 존재 자체로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내 자존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산에 다니기 시작해 지금까지 틈만 나면 전국의 산을 누빈다. 100대 명산 완등과 백두대간 종주도 했다. 20년 전에는 아예 산 밑으로 이사와 한동안은 거의 매일 북한산에 올랐다. 산은 여럿이 가도 좋지만 혼자 가면 더 좋다. 자기 속도로 가야 제맛이니까. 경치 좋은 바위마다 비야바위, 비야봉, 비야카페 1호점, 2호점… 이름도 붙였다. 산을 비공식적으로 사유화하고 있는 셈이다.
집 근처 족두리봉과 향로봉 가는 길에는 나만의 기도처도 있다. 큰길에서 살짝 벗어난, 겨우 한 사람 앉을 만한 이 작은 공간에서는 기도가 참 잘 된다. 아름다운 바위산을 바라보며 ‘하느님, 감사합니다’로 시작하면 속마음이 고스란히 쏟아진다. 때로는 두 팔을 벌리고 노래도 부른다.
“하느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 /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 /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이 어디서 오나 /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시편 121편을 바탕으로 한 찬양)
이 개신교 CCM이 단골 레퍼토리다. 이 노래는 ‘이렇게 멋진 자연을 만드신 하느님, 그 솜씨로 나를 만드셨으니 내가 얼마나 귀하고 잘난 존재인가?’라는 엄청난 사실을 일깨워준다. 사람들에게 마음 다쳐 속상한 날, 진심이 오해받아 억울한 날, 남들은 다 잘나 보이는데 나만 초라하게 느껴져 밤잠 설친 날… 그런 다음 날 아침, 산속 기도처에서 두 팔을 벌리고 울먹이며 이 찬양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면서 하느님의 온기가 온몸을 감싼다. 마치 ‘비야, 너는 나의 귀한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란다’ 하시는 것 같다.
돌이켜보니 산은 어릴 때는 어른들의 칭찬으로 자존감을 키워주었고, 어른이 된 지금은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시키며 자존감을 지켜주는 내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고백하건대, 젊은 날 정상에서 오래 머물고 싶어서 해지기 직전에야 하산하느라 늘 뛰어 내려온 탓에 무릎 연골이 닳아 이제는 빨리도 길게도 산을 오르지 못한다. 무릎 보호대와 스틱은 필수고, 가끔 진통제도 먹어야 하지만 이렇게라도 산에 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올해 북한산 단풍은 이번 주가 절정이란다. 얼른 배낭 챙겨야겠다.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