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7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AI 말고 인간!] AI가 쓴다? 그래도 인간이 매듭지어야 한다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반대하는 뜻으로 쓰기 시작했다가 찬성으로 글을 맺고 만 어머니를 떠올려 보자. 학원 심야 교습 제한 안에 의견을 보내 달라는 안내문을 받고, 어머니는 반대한다는 첫 줄만 제 손으로 썼다. 이어서는 휴대폰 화면에 먼저 뜨는 말을 눌러 가며 썼다. 말이 그럴듯해 누르고, 다음 말도 그럴듯해 또 눌렀다. 제출 직전에 처음부터 읽어 보고서야 어머니는 결론이 뒤바뀐 것을 알았다. 자기 이름으로 낼 글인데도, 그 끝을 제 손으로 맺었다고 선뜻 말할 수 없었다.

미국 코넬대학교와 코넬텍 등 공동 연구진은 2026년 3월 발표한 논문에서 이와 닮은 상황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물음은 하나였다. 글을 쓰는 동안 AI가 이어질 말을 띄워 주면 쓰는 사람의 생각까지 달라지는가. 연구진은 온라인으로 모집한 참가자 2582명에게 사회적 쟁점에 관해 쓰게 했다. 

첫 실험(1485명)은 모든 학생이 같은 시험을 치르는 표준화 시험을 교육에 써야 하는지를 다뤘고, 두 번째 실험(1,097명)에서는 사형제도와 유전자 변형 농산물 같은 네 가지 쟁점 가운데 하나가 무작위로 주어졌다. 일부는 연구진이 특정 입장으로 기울게 설계한 AI의 제안을 받으며 썼고, 나머지는 아무 도움 없이 썼다. 연구진은 글을 마친 참가자에게 설문으로 생각을 물었다.

연구진이 확인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제안을 받으며 쓴 사람은 도움 없이 쓴 사람보다 생각이 AI의 제안이 기운 쪽으로 더 옮겨 갔다. 둘째,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옮겨 간 줄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제안을 받은 참가자 가운데 3분의 2가량은 그 말이 합리적이고 균형 잡혔다고 답했고, 영향을 받았다고 답한 이는 3분의 1 안팎에 그쳤다. 셋째, 도구가 편향될 수 있다고 글을 쓰기 전이나 쓴 뒤에 일러 주어도 생각이 기우는 정도는 뚜렷하게 줄지 않았다. 요컨대 AI가 이어 주는 말은 쓰는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생각을 움직였다. 다만 연구진은 이 현상이 글쓰기가 생각을 바꾼다는 기존 심리학 연구와 맞닿아 있다고 보면서도, 정확한 원인은 가려내지 못했다고 밝힌다.

이 결과는 두 글쓰기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AI의 글쓰기는 이어 붙이기다. AI는 다음에 올 만한 말을 끝없이 이어 갈 뿐, 어디서 멈출지는 따지지 않는다. AI에게는 입장이 없으니 맺을 이유도 없다. 인간의 글쓰기는 매듭짓기다. 사람은 쓰다가 막히고, 지우고, 다시 쓰다가 마침내 여기서 맺겠다고 정한다. 그 마지막 한 줄에는 글쓴이가 무엇을 믿는지가 걸려 있다.

우리 일상에서도 비슷한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메일을 열면 추천 답장이 먼저 뜨고, 자기소개서의 끝 문장도 추천 문구에서 고를 수 있다. 끝 문장을 고르는 일이 때로는 결론을 고르는 일이 되고, 그렇게 쌓인 결론들 속에서 이 의견이 누구의 것인지가 흐려진다.

물론 초안을 맡겨도 좋은 글은 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믿는지 밝히는 글만은 마지막 매듭을 내 손으로 지어야 한다. 남이 이어 준 말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어디서 맺고 무엇을 결론으로 삼을지는 멈춰 서서 내가 정해야 한다. 그렇게 매듭을 지어야 비로소 남의 생각 앞에서 맞설 수도, 기꺼이 따를 수도 있다. 오늘 당신이 쓴 마지막 글의 끝 문장은 누가 정했는가. AI가 쓴다? 그래도 인간이 매듭지어야 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10-2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10. 27

루카 12장 7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