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 한부모 자녀에게
1인당 월 최대 20만 원 선지급
6900여 가구에 167억 이상 지급
월평균 양육비 58만 원에 못 미쳐
선지급금 회수율 겨우 10% 넘겨
낮은 처벌 수위 등 보완 과제 지적
정구창 성평등가족부 차관이 8월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2차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에서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제재조치와 양육비 채무 이행 확보 제도개선안을 의결하고 있다. 성평등부 제공
“세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양육비를 5000만 원 넘게 받지 못했어요. 아이들이 아빠한테 직접 연락하니 ‘아빠는 없다고 여기라’며 모질게 관계를 끊어내더군요.”
그 여파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던 첫째(16)는 더 이상 학원 보내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둘째(12)와 셋째(9)는 각각 돌봄과 치료가 필요했지만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던 엄마 A씨는 결국 양육비이행관리원(이하 이행원)을 찾았다. 자녀 1인당 매월 20만 원씩 지급되는 ‘양육비 선지급금’을 받기 위해서였다.
A씨는 선지급 결정 통지서를 받은 뒤 평소 자주 이용하던 온라인 커뮤니티에 후기를 남겼다. “매월 일정 금액이 들어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평생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감이 사라졌어요!” 이행원이 ‘양육비 선지급제도’ 시행 이후 공유한 우수 사례다. 제도는 지난해 7월 처음 시행됐다.
‘양육비 선지급제’는 양육비를 받지 못한 한부모가족의 미성년 자녀에게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이후 양육비 채무자로부터 해당 금액을 회수하는 제도다. 시행 이후 올해 5월까지 총 6923가구의 미성년 자녀 1만 917명에게 총 167억 3000만 원이 지급됐다. 지원 대상 자녀는 1인당 월 최대 2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양육비는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도 산하에 미혼부모기금 운영 등으로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낳아 기르는 미혼부모를 지원하며 교회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홀로 일과 양육을 병행해야 하는 가정과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10월 29일부터 양육비 선지급제의 소득 기준이 폐지돼 지원 대상이 확대됐다. 제도는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어려움을 얼마나 덜어주고 있을까. 제도의 성과와 한계,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본다.
양육비 선지급제, 어떻게 운영되나
“이혼할 때 상대가 ‘교육비로만 양육비를 지급한다’는 조건을 달았어요. 법도 제도도 잘 몰라서 나중에 상당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죠. 그마저도 끊겼을 때 양육비 선지급제 시행 전까지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마찬가지로 자녀 셋을 양육하는 엄마 B씨는 2019년 이혼했다. B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전 배우자가 교육비만 주겠다고 법원에 제출했었는데, 이후 그마저 제대로 주지 않아 몇 개월 치 학원비가 밀리면서 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원을 그만둬야 할 처지에 놓이자 B씨는 전 배우자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그는 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적했다. 양육비를 제대로 받기 위해 다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당장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기도 막막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이행원을 알게 됐다. B씨는 “법률 지원부터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지난해 2월 처음 이행원을 방문한 뒤, 제도 시행 때쯤부터 양육비 선지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선지급금 대부분은 아이들 학원비로 쓰고 있다.
B씨는 “첫째가 작년까지 중학생이었는데, 학원을 그만둬야 해 EBS 방송 강의로 공부하곤 했다”며 “시험 기간마다 혼자 울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한부모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결국 금전 문제”라며 “현재 적은 금액이라도 매달 지급된다는 것에 큰 위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의 한 직원이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양육비 선지급금 회수 예정을 알리고 있다.
양육비 선지급제는 양육비를 받지 못한 한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국가가 양육비 채무자에게 지급 책임을 직접 묻는 제도다. 선지급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하고 제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채무자로부터 양육비를 얼마나 원활하게 회수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다.
이행원에 따르면, 양육비 선지급금은 채무자의 자발적 이행을 우선으로 하되, 미이행 시 강제징수로 전환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선지급이 결정되면 신청인뿐 아니라 양육비 채무자에게도 해당 사실을 통지하고, 선지급금 회수 예정임을 안내한다. 이후 회수 통지와 독촉에도 이행하지 않으면 국세 강제징수의 예에 따라 징수 절차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이행원은 양육비 채무자의 금융재산을 포함한 소득·재산 자료를 조사하고, 확인된 급여와 예금·자동차·부동산 등에 대한 압류와 공매로 선지급금을 회수한다. 회수 통지는 올해 1월 19일부터 시작됐으며, 6개월마다 이뤄지고 있다.
이행원 이행지원본부 안은진 본부장
이행원 이행지원본부 안은진 본부장은 “선지급 신청 사실을 통보받은 비양육자가 미지급 양육비를 자발적으로 지급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원활한 징수가 이뤄지도록 앞으로도 급여를 비롯해 가상자산과 매출 채권 등 징수 유형을 다각화하겠다”고 밝혔다.
낮은 처벌 수위에 법 정비 지연 땐 무용지물
양육비 선지급제가 한부모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현행 자녀 1인당 월 20만 원으로는 실제 양육비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가 지난해 3월 발표한 ‘2024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한부모가족 가구주 3315명이 지출하는 자녀 1인당 월평균 양육비는 58만 2500원이었다. 자녀 연령별로는 미취학 자녀 46만 1000원, 초등학생 자녀 50만 5000원, 중·고등학생 자녀는 66만 1000원이다. 가족이 공동으로 지출하는 숙식비 등은 제외된 금액이다.
시민단체 ‘양육비를 해결하는 사람들’(이하 양해들)의 구본창 대표
우리나라 한부모가족의 양육비 문제를 공론화해온 시민단체 ‘양육비를 해결하는 사람들’(이하 양해들)의 구본창 대표는 제도의지속 가능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구 대표는 양해들을 운영하며 8년 동안 약 5000명의 한부모를 만나왔다.
구 대표는 “양육비 미지급률이 여전히 70% 이상인 현실을 고려할 때 한부모들의 어려움이 제도 시행 전후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매년 이혼가정이 9만 건가량 발생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자녀가 18세가 될 때까지 양육비를 온전히 선지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통계청의 2024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미성년 자녀가 있는 이혼은 3만 9000건으로 전체 이혼의 42.8%를 차지했다. 양해들이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 등 신상 정보를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것도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구 대표는 “지금의 법은 양육비 미지급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터무니없이 낮다”며 “결국 한부모가 자립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양육비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법이 현실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적인 예로 지금까지 양육비 관련 단체들이 가장 희망을 걸었던 것이 ‘형사처벌’이었다”며 현행 처벌 수위를 비판했다. 현행법은 법원의 감치명령을 받고도 결정일부터 1년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 대표는 “이마저도 양육비 미지급자가 소장을 받지 않으면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 대표는 “양육자들이 법원의 양육비 이행명령을 받아내고, 미지급자를 상대로 형사 고소까지 하려면 평균 5년 이상이 걸린다”며 “양육비 선지급제도 이같은 법 정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무용지물이 될까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정부 역시 지난 8월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 원 이하로 처벌 수위를 3배 높이는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징수체계 개선·법률 지원 확대 필요
결국 관건은 ‘회수율’이다. 다만 회수율 자체가 제도의 유일한 성과 지표는 아니다. 이행원은 선지급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양육비 공백으로부터 자녀의 안정적 양육과 성장을 지원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성평등가족부 남상희 가족지원과장은 9월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내년도 한부모가족 예산이 올해보다 약 250억 원 늘어나 6510억 원 정도로 편성됐다”며 “양육비 선지급제를 비롯해 한부모가 양육비를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법률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산안에는 선지급 양육비를 회수하기 위해 국세청과 징수시스템을 연계하는 내용도 담겼다”고 밝혔다.
다만 국세청이 직접 징수에 나서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남 과장은 “법 개정에 대한 부분은 지금 재정경제부와 국세청이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성평등부는 재경부 등이 추진하는 법률안의 통합징수 대상에 선지급된 양육비도 포함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출한 상태”라고 전했다. 관련 법 개정 전까지는 기존대로 이행원이 직접 징수를 이어갈 예정이다.
전지현 양육비이행관리원 원장
전지현 이행원 원장은 7월 16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2차 부처 업무보고’에서 “아직 양육비 선지급제에 대한 재원이 부족하지는 않다”며 “적극적인 홍보활동으로 신청자는 꾸준히 늘고 있고, 6월에는 올해 처음으로 선지급액 한 달분이 20억 원을 넘겼다”고 양육비 선지급제의 재원과 회수 현황을 설명했다.
이어 회수율에 대해서는 “업무보고를 앞두고 얼마 전에 10%를 넘겼다”며 “다만 회수 관련 서류를 송달할 때 폐문 부재 등의 상황이 많아, 송달률 또한 60%가 안 되고 변제 기간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라 조금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했다. 고의적으로 송달을 거부하는 이들을 어떻게 찾을 것이냐는 대통령의 질문에는 “열심히 찾겠다”고 답했다.
양육비 선지급제는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자녀에게 국가가 먼저 손을 내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제도가 한부모가족의 실질적 안전망으로 자리 잡으려면 지원 대상을 넓히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선지급금의 회수율을 높이고, 채무자의 책임 이행을 담보할 법적 장치를 마련하며, 개선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밝힌 징수체계 개선과 법률 지원 확대가 실제 제도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 당면 과제다. 양육비 선지급제가 일시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안정적 양육을 뒷받침하는 제도로 안착하려면 정부의 계획이 구체적인 이행으로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