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8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아쿠티스 성인의 ‘세 말씀’ 따라 걷는 작은 순례길

[내 친구 아쿠티스를 찾아서] (4) 이탈리아 밀라노 ‘숨은 성모성당’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밀라노 ‘숨은 성모 성당’ 내 순례 코스
감실·성해 제대·제단화 따라 묵상
‘침묵 속의 성덕’ 보여준 성인 삶 성찰


   

성인이 교적 둔 곳이자 견진성사 받은 장소

성 가롤로(카를로) 아쿠티스가 열다섯 살 생애의 대부분을 보낸 교부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도시, 이탈리아 밀라노. 초·중학교 8년을 다닌 톰마세오 학교 건너편에는 1924년 완공된 신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 성인이 교적을 둔 밀라노대교구 ‘숨은 성모(Santa Maria Segreta) 성당’이다. 교구의 고유 전례인 암브로시오 예법을 이어오는 곳이다.
 



‘숨은 성모’라는 이름엔 태중에 예수님을 품었던 성모 마리아의 신비가 담겨 있다. 아쿠티스는 집에서 가까운 이 성당을 자주 찾아갔다. 2003년 5월 24일에는 당시 밀라노대교구 교구장 대리 루이지 테스토레 몬시뇰(현 아퀴교구장 주교)에게 견진성사도 받았다.
 
마우리치오 코르베타 주임 신부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9월 10일 오전, 미사가 끝난 성당 안에서 마우리치오 코르베타 주임 신부가 기자와 어머니 정진(로사) 작가를 반갑게 맞이했다. 2017년 부임한 그는 아쿠티스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성인을 생전에 알았던 사제와 신자들에게 들은 기억을 순례자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숨은 성모 성당에는 아쿠티스가 남긴 세 가지 말을 묵상하는 순례 코스가 있다. 코르베타 신부는 감실과 성해 제대, 제단화를 안내하며 그 의미를 설명해줬다.
 
정진(로사) 작가가 밀라노 숨은 성모(Santa Maria Segreata)성당에서 성 가롤로(카를로) 아쿠티스가 늘 기도하고 성체조배했던 감실 앞 신자석에서 기도하고 있다.


“성체성사는 하늘나라로 가는 고속도로”

아쿠티스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은 성당 정면 주제대 오른편에 자리한 감실이다. 코르베타 신부가 감실 바로 앞줄 신자석을 가리켰다. 아쿠티스가 생전에 기도와 성체조배를 했던 자리였다. “성체성사는 하늘나라로 가는 고속도로입니다.” 감실 앞에서 묵상하는 성인의 말이다.

코르베타 신부는 당시 주임 잔프랑코 포마 신부가 남긴 일화를 들려줬다. 2000년 새로 부임한 그는 성당에 들어섰다가 감실 앞에서 홀로 기도하던 아홉 살 아쿠티스를 만났다. 왜 자주 오느냐고 묻자 소년은 대답했다.
“기도는 제 마음을 가볍게 해주니까요.” 기도를 통해 집과 학교에서 겪는 일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지내는 법도 배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기도는 일상으로 이어졌다. 아쿠티스는 본당 어린이들의 교리교육을 도왔다. 당시 한 교리교사는 어린이들과 축구 경기를 할 청소년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는데, 약속한 날 아쿠티스만 나왔다고 회고했다. 운동에는 서툴렀지만, 어린이들을 격려하며 함께 뛰었다고도 했다.

코르베타 신부는 “오늘날 스마트폰 화면만 보느라 고개를 숙인 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아쿠티스가 ‘하늘나라’라는 목적지를 가리켜준다”고 강조했다.
밀라노 ‘숨은 성모 성당’ 왼쪽 측면 예수 성심 제대에 안치된 성해와 가족이 기증한 초상화.


“내가 아니라 하느님”

2006년 10월 12일 아쿠티스가 몬차 성 제라르도 병원에서 급성백혈병으로 선종하고 이틀 뒤 이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봉헌됐다. 어머니 안토니아 살차노 여사는 아쿠티스가 평소 도왔던 이주민과 노숙인들도 장례미사에 찾아왔다고 회고했다. 지난 10월 12일에는 교구장 마리오 델피니 대주교 주례로 아쿠티스 선종 20주기 미사가 거행됐다.

성당 왼편 측면 경당에는 성인의 가족이 기증한 아쿠티스 초상화와 심낭 조직 일부·머리카락 유해가 모셔진 예수 성심 제대가 있다. 성인이 첫영성체를 했던 베르나가 수도원의 수녀들이 간직한 것과 같은 종류의 성해다. 이곳에서 묵상하는 말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다.
 
성 카를로 아쿠티스가 교적을 두고 활동한 밀라노 숨은 성모 성당 왼쪽 측면 제대에 안치된 성인의 유해와 가족이 기증한 초상화 앞에서 한 신자가 기도하고 있다.
밀라노 ‘숨은 성모 성당’ 왼쪽 측면 예수 성심 제대에 안치된 성해와 가족이 기증한 초상화.


코르베타 신부도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봐야 할 분은 성인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성인은 하느님의 친구이지요”라고 강조했다. 이어 유해를 만지면 기적이 일어날 것으로 여기기보다, 기도하고 성인의 삶을 본받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 살 소년 토마소의 일화를 꺼냈다.

뇌종양을 앓던 토마소는 아쿠티스가 선종한 성 제라르도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가족들은 아쿠티스의 전구를 청하러 성당에 오기로 했지만, 약속 이틀 전 토마소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저희는 그래도 성당에 가겠습니다.” 토마소의 어머니는 코르베타 신부에게 이렇게 연락했다.

“토마소의 부모님은 성당을 찾아 아쿠티스 성인이 아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 곁에 있게 해줬다며 감사했습니다. 그 믿음이 바로 ‘진정한 기적’이지요. 두 분은 아쿠티스뿐 아니라 세상을 떠난 토마소에게도 어린 두 여동생을 지켜 달라고 청했습니다.”

코르베타 신부는 “저는 아쿠티스에게서 특별한 능력보다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침묵 속의 성덕’을 찾았다”고 했다. 친구들과 한참 어울려 놀고 게임에 몰두할 나이에 하느님을 마음 한가운데 모셨던 아쿠티스. 정말 기쁘게 주님을 사랑했던 그의 미소는 초상화 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다.




금빛 제단화처럼 ‘고유한 존재’로

또 하나의 순례지는 15세기 말 이탈리아 화가 피에트로 베풀코의 제단화 ‘성모 대관’이다. 코르베타 신부는 성당 안 별도 공간에 보관하는 귀중한 작품이라며 “붓으로 그린 게 아니라 금세공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나무판에 순금박을 입힌 뒤 채색하고, 물감을 긁어내 금빛 무늬를 드러낸 것이다. 조명을 끄자 밝을 때는 보이지 않던 섬세한 문양이 나타났다.

 
15세기 말 이탈리아 화가 피에트로 베풀코의 제단화 ‘성모 대관’
15세기 말 이탈리아 화가 피에트로 베풀코의 제단화 ‘성모 대관’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정진 작가, 코르베타 주임 신부, 통역사 이경진씨


“맘마 미아!” 기자가 이탈리아어로 감탄하자 코르베타 신부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도 “이건 정말 가치를 매길 수 없겠다”며 한동안 성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작품 앞에서 묵상하는 아쿠티스의 말은 “누구나 고유한 존재로 태어나지만, 많은 이들이 남들을 모방하다 삶을 마칩니다”이다.

코르베타 신부는 이 말을 성당 제단화처럼 단 하나뿐인 원본과 수없이 찍어낸 복제품에 빗댔다. 아무리 정교하게 복제해도 원본을 대신할 수 없듯, 사람 역시 저마다 고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성당을 둘러본 기자와 어머니는 아쿠티스가 기도하던 감실 앞 신자석에 앉아 성체조배를 했다. 문득 가슴이 울컥했다.

“엄마, 우리가 정말 아쿠티스 성인이 앉았던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게 믿어지세요?”

“아직은 실감이 안 나. 그런데 마음이 참 평온해진다. 성인은 감실 앞에서 무슨 기도를 했을까? 주님과 어떤 대화를 나눴길래 그렇게 행복해했을까. 참 궁금해지네.”

아쿠티스의 행복한 얼굴을 떠올리며 유해가 모셔진 제대 앞에 기도초를 밝혔다. 옆에서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아쿠티스 성인의 참된 모습을 알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부디 우리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10-2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10. 28

시편 107장 8절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을 위한 그 기적들을.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