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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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나의 시사진단]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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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준비하며 우리는 세계의 청년들을 맞을 날을 기다린다. 그 만남에 앞서 묻고 싶다. 우리가 떠올리는 청년의 얼굴에는 누가 포함되어 있는가. 서울에 올 수 없는 청년, 교회에 속하지 않은 청년, 초대받아도 자신을 위한 자리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청년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가.

대회의 규모와 참가국 수를 헤아릴 때, 그 숫자에 잡히지 않는 삶도 살펴야 한다. 초대의 문을 열었다고 누구나 그 문까지 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공료와 숙박비가 부담스러운 청년, 하루 일을 쉬면 생계가 흔들리거나 휴가를 얻기 어려운 청년이 있다. 농어촌과 섬의 청년에게는 거리와 교통편도 장벽이 될 수 있다.

아픈 가족을 돌보거나 자녀를 홀로 키우는 청년, 보호시설을 떠나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도 생각하자. 주거와 부채 문제를 겪는 청년, 장애나 만성질환이 있는 청년, 우울과 불안, 고립 속에 지내는 청년도 있다. 성소수자 청년과 이주 배경 청년, 학교 밖 청년과 구직에 지친 청년까지,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가 우리의 준비 안에 자리해야 한다.

난민과 무국적 청년은 이동에 필요한 서류와 안전한 경로를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주 노동자 청년은 한국에 살면서도 노동시간과 언어, 체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만남에서 멀어질 수 있다. 해외에서 오는 청년을 향한 환대가 이미 이 땅에서 살아가는 청년에게도 닿고 있는가. 전쟁과 박해, 이동 통제로 오기 어려운 청년, 군 복무 중이거나 교정시설에 머무는 청년도 기억하자.

종교가 없거나 다른 신앙을 가진 청년, 신앙을 찾는 중이거나 교회에서 상처받아 떠난 청년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에서 모든 청년이 하느님의 마음과 교회의 마음 안에 있음을 상기시킨다.(235항) 교회와의 거리가 그 사람의 존엄이나 우리의 사랑과 기도의 범위를 결정할 수는 없다.

이들을 기억하는 일은 저마다의 사정을 듣고 환대가 닿지 못한 이유를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대회에 오지 못한다고 관심이나 신앙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지 말자. 누구도 자신의 삶을 해명해야만 환영받는다고 느끼지 않도록 우리의 말과 태도를 돌아보아야 한다.

기도는 구체적인 준비로 이어져야 한다. 참가비와 교통비 지원, 돌봄의 공백을 메울 손길, 통역과 이동 지원 방안을 마련하자. 형편에 맞는 참여 방식을 함께 찾고, 현장에 오지 못하는 청년도 자신의 목소리를 전할 통로를 열어두자.

우리의 기억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청년들의 자리도 있다. 질병과 사고, 산업재해와 폭력, 전쟁과 사회적 참사로 목숨을 잃은 청년들, 자살로 세상을 떠난 청년과 홀로 죽음을 맞이한 청년도 잊지 말자. 죽음의 원인이나 숫자만이 아니라 저마다의 이름과 살아온 날들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 드리자. 남겨진 가족과 벗들이 슬픔을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곁을 지키자. 그들을 기억하는 일은 살아 있는 청년들의 생명을 지키는 책임으로도 이어져야 한다.

동쪽 끝 서울로 향하는 WYD 순례길은 만남의 기쁨과 부재의 아픔을 함께 품는 길이어야 한다. 모든 이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참여하며, 미사와 기도 안에 이들의 삶을 품고 일상에서도 기꺼이 곁을 내어 주자. 이 동반은 대회가 끝나도 이어져야 한다. 누구도 우리의 기억과 기도, 환대 밖에 남겨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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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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