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된 열여섯 번째 생일은 나의 삶이 새로 시작된 날이다. 당시 나는 스페인 중산층 자녀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다. 좋은 집, 멋진 부모님, 오빠와 두 언니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행복한 아이였다.
그날도 여느 생일처럼 학교 친구들의 축하와 선물을 받고, 오후에는 클래식 기타 연주를 배웠다. 뉴스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항상 잠들기 전 라디오로 세계 곳곳의 소식을 듣는데, 2년 전엔 베를린 장벽의 붕괴(1989) 소식을 듣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열여섯째 생일 밤, 행복한 생일을 보낸 후 잠이 들려는 순간 걸프전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당시 나는 기도하는 방법조차 몰랐지만, 나의 첫 번째 기도를 올렸다. “주님, 이라크나 쿠웨이트에도 오늘 저처럼 생일을 치렀을 소녀가 있습니다. 이 지구에 평화를 주시고, 그 아이에게 평화로운 생일을 허락하소서.” 잠시 후 나는 평화와 용기를 얻고 마침내 잠들 수 있었다.
열일곱 살 때, 나는 교환학생으로 영국 북아일랜드에서 지내며 또 한 번 놀라운 경험을 했다. 일 년 후 대학과 전공을 결정할 때, 예전 내 기도 속의 이라크 소녀가 떠올랐다. 언어를 배우는 것도 무척 좋아했지만, 전쟁 지역이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국제기구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통역과 번역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2학년이 되어 영국 런던에 간 나는 그곳에서 열정과 꿈에 가득 찬 대학생활을 누렸다. 크랜베리즈의 멋진 콘서트가 끝난 후 우리는 사인을 받기 위해 ‘로열 알버트 홀’ 밖에서 밴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콘서트에 온 십여 명의 젊은이들이 혼수상태에 빠져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몇몇은 술과 마약을 과다복용하여 거의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날 밤 나는 또 울며 이번에는 하느님께 화를 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시는 겁니까?”
그날 밤 나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런던에 머물던 그 해, 부드럽고 연약한 산들바람처럼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너를 만들었다. 그들에게 가거라. 나의 젊은이들에게 가서 내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주거라. 나는 너를 창조하였노라⋯.’
그때 선교단체의 회원이던 언니의 권유로 런던 근교에서 열리는 청년들을 위한 기도모임과 피정, 미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들의 청빈과 행복, 순수와 진실이 내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다. 그 해, 기도 속에서 하느님은 나의 모든 의문에 답을 주셨다.
스무 살이 되던 그 해 말, 나는 일주일간 영성수련에 참가했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어라.”(탈출 3,7) 이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전하는 말씀이지만, 이제는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된 것이다.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단 한 명이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며 내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선교사가 된 지도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나의 삶 속에 들어왔고, 나 역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예수님의 사랑만이 우리에게 평화를 준다는 사실을 지금처럼 확신해본 적이 없다. 예수님의 자비와 용서만이 우리 삶의 기반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