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셀부르크 수도원. 중앙의 성 십자가 성당은 12세기 데도 백작이 창건한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 성당으로 2018년 준 대성전으로 승격됐다. 왼쪽 위의 흰 건물은 신교 성 오토 교회로 이곳의 신·구교 역사를 보여준다. 종교개혁 이후 수도원은 세속화됐고, 성당은 귀족의 궁정교회로 사용됐다. 1993년 바이에른 에탈 수도원의 베네딕도회원들이 정착하면서 450년 만에 수도 생활이 부활했지만, 수도자 부족으로 2026년 말 철수를 앞두고 있다. 출처=드레스덴-마이센교구
중장년층 신자들에게 수녀님은 본당 신부님과 함께 성당에서 늘 만날 수 있던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점차 그럴 기회가 없어지고 있지요. 수도 성소 감소와 고령화로 본당에 파견할 여력이 없어진 데다, 수도회들이 고유한 영성과 사도직에 집중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닙니다. 850년 역사를 지닌 독일 벡셀부르크 수도원에서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올해 말 철수한다는 소식을 최근 들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450년 만에 수도 생활을 되살린 곳이었는데, 다시 수도자 없는 공간으로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곳에는 수도자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온 것이 있습니다. 성당 중앙에 우뚝 솟은 13세기의 십자가상입니다. 오늘은 신앙의 역사를 지켜 온 그 십자가를 만나러 떠나봅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벡셀부르크 수도원 성 십자가 바실리카. 1180년 무렵 완공됐으며, 15세기에 천장을 지금의 고딕식 늑재 궁륭으로 바꿨다. 중앙의 레트너는 신자석과 성직자·수도자의 제단부를 구분하던 가림벽으로 명칭은 라틴어 ‘독서대’에서 유래했다. 1683년 해체된 것을 동독 시절인 1971~1972년에 복원했다.
신교 지역에서 되살린 가톨릭 신앙
벡셀부르크(Wechselburg)는 신교가 우세한 작센주의 라이프치히와 켐니츠 사이에 자리한 작은 마을입니다. 주변 마을까지 합쳐 주민이 약 1,700명에 불과한 이곳은 12세기 수도원을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벡셀부르크는 독일어로 ‘교환한 성’을 뜻합니다. 종교개혁 당시 작센 공작 모리츠가 수도원을 세속화한 뒤 다른 가문의 영지와 맞바꾼 데서 유래했지요.
마을로 접어들면 저 너머로 귀족의 성처럼 보이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옛 수도원 건물을 토대로 세운 바로크 궁입니다. 문루를 지나면 그 궁과 이어진 성 십자가 바실리카가 나타납니다. 높이 솟은 종탑이 없어 성당인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두꺼운 석조 벽체와 반원형 창문에서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의 역사는 12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156년 이 일대를 상속받은 그로이치의 데도 백작은 가족 묘지로 사용할 성당을 세우고,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할 아우구스티노회 공동체를 초빙했습니다. 1278년에는 독일기사단이 수도원을 넘겨받아 지역의 종교 중심지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수도원은 귀족의 거처로 바뀌었고, 18세기에는 성당에 붙어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습니다.
이곳에 가톨릭 신앙이 되살아난 것은 19세기였습니다. 1869년 쇤부르크 가문 카를 백작 부부의 가톨릭 개종이 전환점이 됐지요. 하지만 신교가 우세한 작센에서 가톨릭 신앙의 부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정원에 루르드 성모 동굴을 조성하고 가톨릭 전례를 거행하자, 1900년에는 경찰이 외부 신자들의 출입을 막아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신자들의 순례가 다시 이어졌고, 동독 시절에는 전쟁으로 파손된 성당도 복원됐습니다. 통일 후 1993년 바이에른 에탈 수도원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정착하면서, 마침내 450년 만에 수도 생활이 부활합니다.
벡셀부르크 ‘승리의 십자가’. 1230년 무렵 제작된 목조 조각군으로, 십자가 상단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를 안은 성부가, 양옆에는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천사들이 자리한다. 아래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사도가 왕의 형상 위에 서 있다. 십자가 밑에서 몸을 일으키는 아담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죽음을 넘어 구원받는 인류를 상징한다.
제대에 새겨진 구원의 이야기
성당에 들어서면 큰 십자가상과 그 아래 붉은 돌로 만든 레트너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레트너는 본래 성직자와 일반 신자의 공간을 구분하던 일종의 가림벽입니다. 전례의 변화로 많은 성당에서 사라졌지만, 이곳 레트너의 중앙 강론대에서는 지금도 파스카 성야에 부활 찬송을 노래합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돌에 새겨진 성경 인물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옵니다. 제대 양옆에는 아브라함과 멜키체덱이 서 있고, 위쪽 아치에는 제물을 드리는 카인과 아벨이 새겨져 있습니다. 구약의 희생 제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완성된다는 의미로, 감사 기도 제1 양식에서도 이들의 제물을 기억하지요.
구원의 이야기는 맨 위의 거대한 목조 십자가상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승리의 십자가’ 꼭대기에는 성부, 성령 하느님, 아래에는 죽음에서 깨어나는 아담이 표현돼 있습니다. 아담의 죄로 시작된 죽음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극복된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역사가 이 한 공간에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벡셀부르크 청년 저녁 기도. 2000년 시작된 이 모임은 매년 네 차례 열리는 정기 청년 신앙 행사로 드레스덴-마이센 교구를 비롯한 독일 동부 여러 교구의 청년들이 참여해 공동 저녁 기도와 친교를 통해 삶의 고민을 나누고 신앙의 유대를 다진다. 출처=벡셀부르크 수도원
청년들 모여 신앙·고민 나누는 순례지
오늘날 벡셀부르크는 드레스덴-마이센 교구를 대표하는 순례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소수인 이 지역에서 신자들이 만나 신앙의 유대를 확인하는 장소이지요. 연중 청소년, 교회 자선 기구와 본당 등 다양한 공동체의 순례가 이어지는 곳입니다.
젊은이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습니다. 매 분기 열리는 ‘벡셀부르크 청년 저녁 기도’에는 독일 동부 지역의 젊은이들이 함께 기도하고 식사하며 신앙과 삶의 고민을 나눕니다. 많이 모일 때는 200명이 넘는 큰 신앙 행사입니다. 지난 9월 주제 중 하나는 ‘의심―믿음이 흔들릴 때’였는데, 의심과 불안을 감추기보다 십자가 앞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자는 취지였습니다.
레트너 앞에 앉아 중세의 조각가들이 돌과 나무에 새긴 구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지난 850년 벡셀부르크의 역사는 평탄치 않았습니다. 수도원이 폐쇄되어 수도자들이 쫓겨나고, 신자들이 자유롭게 기도할 수 없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갈림길에 섰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구원 이야기는 신앙이 수도원의 건물이나 수도자의 존재에만 매여 있지 않음을 일깨워 줍니다. 믿음의 불꽃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십자가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 특히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젊은이들의 마음에서 벡셀부르크의 기도는 앞으로 줄곧 이어질 것입니다.
<순례 팁>
※ 라이프치히에서 아우토반(A72)을 타고 나르스도르프·로흘리츠 출구에서 B175 도로 이용(약 1시간). 가이타인이나 부르크슈테트역에서 버스(629, 626) 이용.
※ 바실리카 미사: 주일 및 대축일 10:30. 평일 12:00(월·수), 17:00(수). 시간 기도 6:45, 12:00, 18:00, 19:30. 피정의 집 및 순례자 숙소 운영. 쇤부르크 궁 정원에 루르드 성모 동굴.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7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