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4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누가 뭐래도 나는 만 원이니까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자존감은 어떻게 높이는 거예요?”

주일미사가 끝난 뒤 성당 마당에서 만난 젊은 엄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릴 때 산에서의 경험이 내 자존감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지난주 글을 읽었다며, 초등학생인 자기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다고 했다.

“어머, 아동심리 전문가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웃으며 얼버무렸지만, 그날 종일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존감은 무엇인가? 나는 자존감이 높은가? 그렇다면 그건 어디에서 온 걸까?

자존감(自尊感)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남의 평가나 외부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 실수하거나 비난받아도 자신을 부정하거나 낮춰보지 않는 태도다. 이에 따르면 내 자존감 지수는 꽤 높은 편인 것 같다.

지난 글에 썼듯이, 아장아장 걷는 꼬마가 산에 갈 때마다 낯선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초등학생 때까지 이어진 이 경험은 나라는 존재 자체로 관심과 칭찬받는 기쁨을 깊이 새겨주었다. 이 기억이 내 자존감의 밑바탕이 되었을 거다.

물론 늘 꽃길은 아니었다. 집안 사정상 대학 입시에 떨어진 후 곧바로 돈을 벌어야 했다. 잠을 줄여가며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중 세무서 업무 보조도 있었다. 직속 상사는 하루가 멀다고 나를 깎아내렸다. “고졸이 뭘 알겠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여자가 무슨 말이 많아?”라는 막말을 수시로 했다. 저녁에 클래식 음악다방 DJ로 일하는 것을 비웃으며 “네까짓 게 뭘 안다고 클래식이야?”라기도 했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돈이 필요했으니까.

자존감이 무너질 때마다 일기장에 속마음을 쏟아냈다. 눈물로 얼룩진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남아 있다. ‘어떻게든 참고 견디자. 이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나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만 원이니까!’

그때 나는 자신을 그 당시 최고액권인 만 원짜리 지폐라고 생각했다. 만 원권 지폐는 구겨져도, 젖어도, 흙이 묻어도, 심지어 신발로 짓밟혀도 만 원이란 가치에는 변함이 없다. 이처럼, 다른 사람이 나를 아무리 함부로 대해도 내 존재의 소중함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되뇌었다. 이 믿음이 19살의 나를 버티게 했고 지금까지도 나를 지탱하고 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나눴더니 옆에 있던 신부님이 무릎을 쳤다.

“만 원 이야기, 강론 때 쓰면 딱 맞겠어요. 그게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마음가짐이거든요.”

하느님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라고 말씀하신다. 내 가치는 세상 기준이나 타인의 평가로 정해지는 게 절대 아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다. 이를 깨닫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하느님이 바라시는 자존감의 본질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나저나 이제는 최고액권이 5만 원이니, 내 자존감도 자동으로 5배 인상되었다. 하여간 요즘 안 오르는 게 없다니까!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11-0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11. 4

1베드 4장 10절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