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실지, 집에서 계속 돌볼지를 두고 삼 남매의 단체 대화방이 사흘째 조용하다. 맏딸은 집안 사정을 길게 적어 인공지능(AI)에 물었다. 비용과 건강, 형제들의 형편까지 따져 본 답이 몇 초 만에 도착했다. 문장은 차분했고 근거도 탄탄했다. 그런데도 맏딸은 그 답을 대화방에 올리지 못했다. 답대로 했다가 후회가 남으면, 그 후회는 누구의 몫이 되는가.
AI의 조언을 사람들은 얼마나 받아들일까. 이를 실험한 연구가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과 독일 WHU 오토 바이스하임 경영대학원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2026년 3월 발표한 논문에서, ‘뉴욕타임스’의 윤리 상담 칼럼에 실린 고민 스무 가지를 가져왔다. 칼럼 필자의 조언과 AI의 조언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점수를 매기게 했다. 일반인과 경영대학원생, 윤리를 연구하는 학자와 성직자까지 모두 187명이 참여했다. 두 조언의 도움 점수에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 두 조언을 함께 보여 주고 더 도움이 되는 쪽을 고르게 하자, 전체 선택의 57퍼센트에서 AI의 조언이 뽑혔다. 다만 이 쏠림이 통계적으로 뚜렷했던 것은 일반인 집단뿐이었다.
연구진은 이어서, 좋은 조언을 알아본 사람이 AI에 마음을 여는지 살폈다. 642명을 세 집단으로 나누었다. 첫 집단에는 조언 없이 고민만 보여 주고, 사람 전문가와 AI 중 어느 쪽 조언을 받고 싶은지 물었다. 사람을 택한 선택은 72.6퍼센트였다. 둘째 집단에는 두 조언을 누가 썼는지 밝히고 보여 준 뒤 어느 쪽이 더 도움이 되는지 물었더니 사람을 택한 선택이 53.2퍼센트였다. 셋째 집단에는 같은 질문을 하되 누가 썼는지 밝히지 않았고, 사람을 택한 선택은 46.3퍼센트로 절반 아래까지 낮아졌다. 연구진은 AI 조언의 질을 확인하면 AI를 꺼리는 마음이 줄어든다고 본다. 다만 질문의 틀이 달라진 영향일 수 있다는 단서도 달며, 윤리 영역의 신뢰가 생각보다 유연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연구진이 신뢰가 유연할 수 있다고 해석한 이 결과를, 필자는 경고로 읽는다. 누가 썼는지 모를 때 사람을 고르는 비율이 가장 낮았다. 좋은 조언이라면 누가 썼는지 따지지 않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뜻으로 읽힌다. 조언이 믿음직해질수록 판단까지 맡기고 싶어질까 봐 필자는 걱정한다. 그러나 조언과 책임은 길이 다르다. AI의 조언은 답을 건네는 데서 끝난다. 인간의 책임은 그 답대로 한 일의 끝을 짊어지는 데서 비로소 시작된다. 조언은 누가 해도 되지만, 책임은 선택한 사람만이 질 수 있다.
삶의 갈림길에서는 더 그렇다. 부모님께 병명을 알릴지, 형제의 빚보증을 서 줄지, 동료의 실수를 상사에게 보고할지. 이런 물음에 AI는 언제든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답대로 했다가 일이 틀어졌을 때 “AI가 그러라고 했다”는 말은 변명이 되지 못한다. AI는 사과문을 대신 써 줄 수는 있어도, 사과하는 자리에 대신 서 줄 수는 없다.
답을 건네는 일은 기계가 맡아도 좋다. 그러나 조언은 맡길 수 있어도 책임은 맡길 수 없다. 다음에 AI가 그럴듯한 답을 건넬 때, 그 답의 끝에 서서 책임질 사람은 누구인가. AI가 조언한다? 그래도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