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시기는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더욱이 새 천년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온통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오늘은 문득 지난 6개월 넘게 계속 써오던 글을 잠시 멈추고 외도(?)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맨 처음 겁없이 ‘성서의 인물’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한 건 딱 두 가지였다. 쉽고 재미있게 인물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인물상이 아니라 또 다른 이면의 인물 모습을 알고 싶었다. 물론 성서를 구석구석 뒤지면서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 특히 위대한 인물들과 거리감을 갖게된다. 그는 나와는 다르다는 선입견을 갖기 일쑤다. 그러나 만약 그런 사람들과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더 나아가 그의 일상으로 들어가 그의 삶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아마도 그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란 공통점과 더 진한 친근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성서의 인물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이 특별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지닌 아니 못할 수도 있는 인간임을 알고 싶었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성서의 인물은 늘 나에겐 살아숨쉬는 살아있는 인물이었다. 그저 내 곁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만남이란 하느님의 가장 큰 은총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만남이든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만남은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아름다운 추억도 있겠지만 생각하기조차 두려운 상처도 있게 마련이다. 과거는 흘러갔지만 여전히 내 안에 남겨져 있다. 내 기억 속에 무의식 속에 때로는 내 삶 속에 침전되어 있다. 어떤 사람도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때로는 당시엔 전혀 느끼지도 못했고 깨닫지도 못한 과거의 사실과 느낌과 만날 때도 있다. 한 장의 빛바랜 사진과 편지 속에서도 기억하지 못한 과거와 만날 때가 있다.
성서의 인물은 분명히 과거의 존재들이다. 그런데 상상과 생각 속에서 전혀 다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살았던 그들과의 만남 자체가 신비롭고 경이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또 상상과 기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도 한다. 과거에 존재했던 성서의 인물들 안에서 때때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하고 죄 많고 약점 많은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 성서의 인물들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얼마 전 요즘의 화제작 ‘러브레터’를 보았다. 그 영화의 이야기는 다분히 만화적인 소재인데 왜 그토록 사람들이 감동할까 생각해 보았다. 어떤 이는 현대인 특히 신세대는 시각적 존재이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마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과 같은 영화의 배경이나 장면 등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그런데 나이든 관객들은 그 영화를 보면서 학창시절 첫사랑 등의 소재를 통해 자신의 과거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잊혀졌던 과거를 반추하게 하고 아름답고 아쉬운 추억을 현재 안으로 옮겨오기 때문이 아닐까.
두 여자 주인공 ‘히로코’와 ‘이츠키’는 한번도 만나지 않은 채 편지로만 만난다. ‘히로코’는 자신의 죽은 애인의 과거를 알고 싶어한다. 또 ‘이츠키’는 남자의 중학교 시절을 기억해 편지를 쓰면서 과거를 현재화시킨다.
관객은 대개 다음의 두 장면에서 뭉클한 감동을 느낀다. ‘히로코’가 애인이 죽은 산에서 “오겐키데스카(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라고 절규하는 장면과 ‘이츠키’가 도서 대출표에서 남자가 그렸던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전자는 과거로부터의 이탈 후자는 과거와의 새로운 만남이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의 첫사랑을 발견한 ‘이츠키’의 모습이 더 가슴이 아픈 까닭은 왜일까?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그냥 흘러갔던 과거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때문일까? 과거가 때로는 현재의 자신을 깨닫게 하고 세상과 인간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한다.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 자신도 과거와 미래 사이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성서와 그 속의 인물들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시는 ‘러브레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너무 감상적일까. 성서의 인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느님과 우리 자신의 만남의 장이다. 비록 내 자신이 깨닫지 못해도 과거부터 존재했던 하느님의 사랑을 현재 속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축복이고 행복이다. 새해에도 또 만나게 될 성서의 인물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이번 호 ‘생활 속의 복음’은 쉬는 대신 ‘성서의 인물’을 옮겨 싣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지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