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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를 밟아라, 나는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미카엘의 순례일기] (15)일본 박해시대의 ‘후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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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는 실제 사용했던 후미에가 19개 남아 있다. 나가사키 26성인 기념관에 소장 중인 후미에.



일본 나가사키시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해변에는 3대 교우촌 중 하나인 ‘소토메’가 있습니다. 조용하면서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지금은 은퇴 이후 한적한 삶을 찾는 외부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지만, 사실 박해를 피해 모여든 신자들이 200년이 넘도록 숨어 살던 곳 중 하나입니다. 메이지유신으로 박해가 끝난 이후엔 일본 성소의 산실이라 불릴 정도로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많이 배출했고요. 지금까지도 인구 1만 5000명이 안 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역대 일본 추기경님 다섯 분 중 두 분이 이곳 출신일 정도니까요.

소토메 교우촌에서 차로 5분 이내의 거리에 작은 언덕이 솟아 있습니다. 작은 가게에서 파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이 아주 맛납니다. 언덕 한쪽으로는 소토메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반대쪽으로는 푸른 바다가 보입니다. 햇볕은 따뜻하지만 바람은 항상 거셉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에 의해 복음이 전파된 이후 지독한 박해를 겪은 일본 교회는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직자도 없이 신앙을 지켜왔는데, 이곳 소토메의 신자들도 매일 이 언덕에 올라 바다 건너 사제를 싣고 올 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하염 없이, 기약 없이 그저 막연하게 말입니다. 옆집에 소리가 들릴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라틴어 기도문을 뜻도 모르는 채 되새기면서, 자그마치 200년이 넘도록 말입니다. 그들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저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았을까요? 400년 전의 그 마음을 느껴보고자 순례자들은 바다를 향해 주님의 기도를 함께 바칩니다. 바다는 ‘침묵’하며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습니다. 소토메 마을에 세워진 엔도 슈사쿠 기념비에 쓰인 글귀가 떠오릅니다.

“주여! 인간은 이리도 슬픈데 바다가 너무나도 푸릅니다.”

간혹 순례 전에 순례자들에게 숙제(?)를 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순례하는 이들에게는 복음서를 다시 정독하기를 권하고, 터키ㆍ그리스 순례 전에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읽어오기를 주문하는 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순례를 떠나기 전에는 엔도 슈사쿠의 역작 「침묵」이라는 소설을 권합니다. 막부시대에 처절한 박해를 겪으며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던 일본 교회의 상황을 생생히 그려낸 책입니다. 몇 해 전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책이나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역시 ‘후미에’에 관한 것입니다. ‘밟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작은 목판이나 금속판으로 만들어진 예수님 혹은 성모님의 성화상을 말합니다. 이 후미에를 밟는 행위를 ‘에부미’라고 부르는데 박해 시대에 모든 일본인이 신년 초에 관청에 가서 행해야 했던 일입니다. 관원이 후미에를 들고 움직일 수 없는 환자 집을 방문했다고 하니 그 철저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후미에를 밟기 전날, 신자들은 성화상을 밟아야 하는 자신의 발을 씻고 또 씻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관리의 눈에 띄지 않게 살살 밟아야 하며, 가능하면 가운데를 밟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의식을 치르고 돌아서서는 관청 뒤에 있는 나무를 붙잡고 오열했고, 그날 밤은 주님을 밟은 아픔에 ‘통회의 기도’를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매년 행해야 하는 이 슬픈 죄의 사슬을 사제에게 간절히 고백하고 싶지만, 그 고백을 받아줄 사제가 없습니다. 이 끝없는 고통은 무려 250년 동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관헌에 체포된 선교 사제 로드리고는 함께 끌려온 신자들이 밤새 고문에 시달리며 처절하게 울부짖는 것을 들으며, 그들의 고통에 ‘침묵’하는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밤이 지나고 결국 그들을 살리기 위해 그가 후미에를 밟는 장면이 나옵니다. 수많은 사람에 의해 밟혀 닳고 닳은 예수님의 얼굴에 발을 대는 순간, 주님께서 이야기하십니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다.”

그리하여 로드리고는 하느님이 결코 ‘침묵’하신 것이 아니며, 오히려 내내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고 계셨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때보다 조용한 주님 부활 대축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대신해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작아진 것은 결코 아니겠지요. 이제 주님 부활 대축일을 뒤로 하지만,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잊지 않으며 또 한 해를 살아야겠습니다. 역사 속의 수많은 박해를 살았던 모든 순교자가 주님 곁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하며 지켜보실 것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꿈꾸었던 믿음의 세상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말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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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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