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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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성월 기획] 죽음, 지상생활 마치고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과정

주교회의 편찬 ''가톨릭교회 사말교리''(1)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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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은 원죄의 결과로, 지상생활의 마침이다.
그러나 죽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됐다.
사진은 2009년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직후 모습. 평화신문 자료사진
 
 
 절대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사람도 누구나 다 죽는다. 사람이 죽으면 하느님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게 된다. 그 결과에 따라 천국과 지옥 또는 연옥에 가게 된다는 가르침이 `사말(四末) 교리`다. 사말 교리는 죽음과 그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가르침이며, 사말은 곧 죽음ㆍ심판ㆍ지옥ㆍ천국을 말한다. 11월 위령성월을 맞아 죽음과 죽음 이후 상태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발간한 「죽음ㆍ심판ㆍ지옥ㆍ천국-가톨릭교회의 사말 교리」의 주요 내용을 4회에 걸쳐 요약 정리한다.


 1. 죽음은 지상 생활의 마침이다

   인생 여정은 흔히 나그넷길에 비유된다. 가톨릭교회도 인생을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이라고 표현하고, 그 여정은 죽음으로 종결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죽음이 있기에 삶을 좀 더 소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죽음은 우리 삶에 긴박감을 준다. 인생이 시간적으로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이며 진지하게 대할 수 있다.

 인생은 반복되지 않는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진다"(히브 9,27)는 말씀대로 인간은 지상생활을 마감한 다음 다시 지상생활로 오지 못한다. 교회는 환생(還生)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산하 국제신학위원회는 환생설에 대해 "성경과 교회 전승에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이방인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규정하고, 네 가지 반대 이유를 제시했다. 네 가지는 △환생설은 반복할 수 없는 유일회적인 삶을 거부한다 △무한히 반복되는 윤회를 주장하면서 영원한 벌과 영원한 행복을 거부한다 △자신의 업을 철저하게 자신의 힘으로 정화해야 하는 입장을 취하는 환생설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하느님 은총의 여지를 박탈한다 △영혼을 본질적으로 육신으로부터 분리하려는 경향을 강조하며 육신의 중요성을 경시한다 등이다.

 환생설에 따르면, 과거의 업보는 여러 생에 걸쳐서라도 철저히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청산돼야 한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하느님만이 죄인을 너그럽게 용서하심으로써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신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여인에게 용서를 베푸셨고(루카 7,47-50; 요한 8,11 참조), 세 번이나 당신을 배반한 베드로를 용서해 다시 불러주셨으며(요한 21,15-18 참조),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셨다(마르 14,24 참조).


 2. 죽음은 원죄의 결과다
 
 구약의 코헬렛 저자는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코헬 12,7)며 죽음을 자연적인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음이 인간 실존 전체에 큰 충격과 두려움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신과 영혼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에 죽음은 영혼과 육신 모두에 타격을 준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피하려 하고 슬픔과 상실감, 두려움을 느낀다.

 예수님께서도 친구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비통해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고(요한 11,33-35 참조), 당신 죽음에 직면해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여 괴로워하셨다(마르 14,33-34 참조). 이런 배경에서 성경이 죽음을 죄와 밀접하게 연결지어 설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창조 설화는 최초의 인간이 하느님의 명을 어긴 결과로 죽음이 왔다고 설명한다(창세 2,17; 3,3.19 참조). 바로오 사도는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다"(로마 5,12)며 죽음을 "죄가 주는 품삯"(로마 6,23)이라고 규정한다.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죽음은 최초의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로 세상에 들어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고"(히브 2,15)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가 죽음에서 벗어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셨다.


 3. 죽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됐다

 1)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옮겨 가는 과정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이다.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한 미사에서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하고 기도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죽음은 미래의 영광스러운 부활로 가는 조건이며 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인간에게 죽음을 더 이상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는 행복한 탄생으로 평화롭게 맞이할 가능성을 열어줬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이들은 바오로 사도와 함께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1코린 15,55)와 같이 고백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빈번히 언급된 `임사(臨死) 체험`은 죽음이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임을 확인해 주는 듯 보인다. 임사체험을 한 이들의 경험을 종합하면 그들은 자신이 육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체험하고, 자신의 육체와 구분되는 다른 몸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미 죽은 친척, 친구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인사하는 것을 보며,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빛나는 존재, 사랑과 따뜻함을 발산하는 존재를 만난다.… 다시 이승의 삶으로 귀환해 원래 육체와 재결합한다.

 이런 체험은 가톨릭교회 가르침과 닮았다.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육신과 영혼의 분리, 변화된 육신, 죽은 이들과의 재회, 심판하면서 동시에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새로운 삶 안에서 누리는 행복 등이다.
 
 2)죽음의 능동적 수용

 사람은 누구나 죽을 운명에 놓여 있지만 죽음을 능동적 태도로 맞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죽음을 능동적 태도, 곧 성부의 뜻에 순명하는 행위(마르 14,36), 성부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는 행위(루카 23,46 참조), 성부께 돌아가는 행위(요한 14,2 등 참조), 당신의 사명을 완성하는 행위(요한 19,30)로 받아들이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능동적 자



가톨릭평화신문  201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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