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마르코 복음서

[월간 꿈 CUM] 약속 _ 신약이 말을 건네다 (6)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대성당에 있는 마르코 복음 사가의 무덤


Q.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는 누구입니까? 또 수신인은 누구입니까?

A. 전통적으로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는 사도 바오로의 협조자요 사도 베드로의 통역이던 요한 마르코라고 합니다.(콜로 4,10; 2티모 4,11; 사도 12,12; 15,37) 그리고 마르코 복음서의 수신인은 이방인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Q. 마르코 복음서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습니까?
A. 16장의 전반부(1-8장)는 주로 기적 사화로만 구성되어 있고, 후반부(9-16장)는 대체로 수난 사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 기적 사화의 메시지는 예수님을 초인간적인 하느님의 아들로 전하는 것이고, 후반부 수난 사화의 메시지는 예수님을 고난당하시는 하느님의 아들로 전합니다.

머리말(1,1-13)
1. 메시아의 신비(1,14-8,26) ① 1,14-3,6 : 예수님과 군중 ② 3,7-6,6 :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 ③ 6,7-8,26 : 예수님과 제자들

분기점 : 베드로의 고백(8,27-30)

2. 인자의 신비(8,31-16,8) ① 8,31-10,52 : 인자의 길 ② 11,1-13,37 :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③ 14,1-16,8 : 수난과 부활

부록 :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들(16,9-20)

Q. 마르코 복음서는 언제 어디서 기록되었습니까? 그리고 당시 시대 상황은?

A. 기록연대는 서기 70년 전후로 추정되며, 기록장소는 전통상 로마로 알려져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마르코 복음서의 기록장소가 이스라엘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서는 박해와 고난의 시기에 쓰여졌습니다. 그러기에 마르코는 그리스도교인에 대한 로마제국의 박해가 극심했던 때 고난과 박해를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인들로 하여금 그 고난에 적절히 대처하며 또한 희망을 갖고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펜을 잡았습니다.

Q. 마르코 복음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A.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는 역사적으로 생존하셨던 예수님을 초점으로 하면서도, 그 분의 전기를 소상히 쓰거나 역사적 사실로 그분의 말씀을 입증하려고 의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역사적 현실과 무관한 예수님의 어록과 선포 내용만을 모으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초점은 ‘복음선포’, 곧 ‘하느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참된 정체와 가르침을 바로 알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의 참된 제자가 되도록 이끌려는 신앙적 의도에서 ‘복음서’라는 독특한 양식의 글을 저술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 길이가 짧고, 예수님의 말씀들은 매우 간결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비교적 적게 수록하는 대신에 사건들을 기술 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Q. 마르코 복음서의 신학적 특징은 무엇입니까?

A.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줍니다.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정체를 첫 장에서부터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수차례나 다양한 방식으로 보도합니다. 반면에 예수님 정체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도록 명하는 예수님의 함구령이 가끔씩 보도되기도 합니다. 이런 함구령은 예수님의 정체가 드러나기는 아직 충분하지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는 백인대장의 고백으로 아무런 장애 없이 선포됩니다.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마르 15,39) 결과적으로 죽음의 순간에야 비로소 예수님의 참 존재가 선포되었습니다. 

Q. 마르코 복음서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A. 마르코 복음서는 철저하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라는 질문에 답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백인대장이 고백한대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 15,39) 그분은 일정한 역사와 팔레스티나라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사셨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시어 이제 시공간의 테두리를 벗어나 언제나 사람들 가운데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은 또한 공적(公的)으로 지탄받고 따돌림을 받던 죄인들과 사귀시면서 인간의 근본적인 소외를 달래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근본적인 친교를 회복시켜 주심으로써 인간에게 하느님 나라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려면 구원의 책임자이시고 우리 구원 자체이신 예수님을 믿어야하고, 또 그분이 선포하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란 이 세상에서 사셨다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체적인 인물, 그리스도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일상사 속에서, 크고 작은 여러 사건 안에서 살아 계시고 역사(役事)하시는 그리스도님을 보아야 하고, 우리 사이에 늘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만나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29)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주임을 지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3-1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8

마태 3장 17절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