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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믿음의 길 달려 온 이재호(스테파노)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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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직업군인으로 숨 가쁘게 달려 온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군생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육군 제1군수지원사령부 부사령관 이재호(스테파노·54·군종교구 통일대본당) 대령은 견디기 힘들었던 고통 속에도 하느님의 섭리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재호 대령은 전후방 각지 군성당에서 한 알의 밀알처럼 신앙의 향기를 전하며 군인이자 사도로 살아 왔다. 이 대령 옆에는 그를 신앙으로 인도한 아내 조영라(안나·53)씨가 있었다.



■ 결혼의 조건인 세례에서 시작된 신앙

이 대령은 1986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육사 46기)해 생도 3학년 때인 1988년 육사 화랑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처음부터 신앙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려면 천주교 신자가 돼야 했기 때문이다. 처가가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어서 “사위의 첫 번째 조건은 천주교 신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조건을 채운 이 대령은 1992년 3월 1일 부산교구 울산 월평성당에서 혼인성사를 받을 수 있었다. 아내와의 만남과 영세, 30년간의 결혼생활을 돌이켜 보며 “혼인미사를 통해 지금의 성가정을 만들었던 것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곤 한다.

이 대령 부부는 딸이 2017년 9월에 결혼할 때도 비신자였던 사위에게 “세례 먼저 받으라”고 권유해 사위도 결혼 한 달 전에 먼저 영세하고 혼인성사를 받게 했다.



■ ‘꼴찌가 첫째 되는 신앙’, 아들은 신학교에

이 대령은 아내와 결혼하려는 생각에서 뒤늦게 천주교 신자가 됐지만 ‘꼴찌가 첫째가 된다’는 말처럼 부임하는 부대 군본당마다 사목회 총무와 회장 등을 줄곧 맡아 군복음화에 힘을 보탰다. 아내 역시 성모회 임원과 미사 반주 봉사자로 어딜 가나 남편의 ‘신앙동지’로 살고 있다.

이 대령 부부의 신앙을 물려받은 아들이 2014년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해 “신학교에 가겠다”고 말했다. 이 대령은 “사제의 길은 영광스럽지만 너무나 힘든 길이다. 일반 대학에 다녀 보고, 그래도 사제의 길을 가겠다면 흔쾌히 허락하겠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아들이 고3 여름방학 때 신학교에 가겠다는 다짐을 담아 보낸 장문의 손편지를 받아 보고 아들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지금은 부부가 한마음으로 성소의 길을 걷는 아들을 응원하고 끊임없는 기도를 바치고 있다.

이 대령 부부는 자녀 또래인 군장병들에게 군복무 면에서는 물론 정서적인 면에서도 신앙생활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뒤늦게 신앙을 받아들인 이 대령은 군생활 중 불시에 닥치는 위험한 순간들과 정신적 어려움도 신앙 안에서 이겨내고 기쁨과 감사로 승화시켰던 체험을 숱하게 떠올린다.

초급 장교 시절 공수훈련 중 낙하산이 제때 펴지지 않는 사고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소총 개머리판만 조금 휘어져 있을 뿐 몸은 기적적으로 조금도 다치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 중령에서 대령 진급 심사를 앞두고 육군본부에서 일할 때는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자정 넘어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출퇴근이나 산책 중, 운전하면서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었다.

이 대령은 스스로 “신앙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몸소 체험한 신앙의 힘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잊은 적이 없다. 2008년 3월~2010년 2월 이기자부대 신병교육대대장으로 봉직할 때, 낡은 조립식 건물로 된 공소를 정비해 가며 본당 주일미사를 드리고 나서도 꼭 훈련병들과 공소 미사를 함께 드렸다. 아내는 이때도 신교대 공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다. 이 대령 부부는 지휘관으로서 타 종교에 대한 공평한 배려를 잊지 않으면서도 훈련병들이 천주교를 택하도록 먼저 모범을 보였다. 어느 부대에 가도 이 대령 부부는 ‘먼저 모범을 보인다’는 생각으로 봉사했다.

군종교구에서 가장 신자가 많은 계룡대 삼위일체본당에서 2018년 4월~2019년 3월 육군 평협회장으로 봉사할 때는 ‘숨은 신자’ 찾기에 주력했다. 주로 중령급 이상 간부들이 복무하고 전입과 전출이 잦은 계룡대에는 교적 정리가 안 된 신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본당 부서별로 신자들 현황과 연락처를 파악해 다수의 숨은 신자들을 찾아내는 성과를 냈다.


■ 신앙의 길이 나의 길

이 대령이 일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아내가 2011년 5월 암투병을 시작했을 때다. 10년 만인 올해 4월, 아내가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죽을 만큼 힘들다는 항암과 방사선치료 등을 감내하는 순간들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의 시간들을 지나며 가족들의 신앙은 점점 성숙해 갔다. 아들은 학교에 다녀오면 가방을 벗자마자 집안 살림을 도와주던 외할머니와 묵주기도를 소리내 바쳤고, 같은 본당 교우들과 레지오마리애 단원들이 찾아와 치유를 기원했다. 여러 군부대에서 인연을 맺은 신부들도 아내를 찾아 안수기도를 했다. 아내의 암치료가 끝나갈 무렵, 이 대령은 대관령에 있는 부대 연대장으로 발령받아 아내는 청정한 환경에서 요양할 수 있었고 건강을 되찾았다. 결국은 기도의 은총이었다.

이재호 대령은 “하느님께서는 항상 저와 함께하셨다”며 “가장 감사한 일은 신앙인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신앙 안에서 30여 년간 군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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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7-2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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