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삶이 말씀과 성체로 힘을 얻고 풍요로워지길
말씀살기 - 성체성사를 사는 삶
성경은 하느님 백성이 모인 신앙 공동체에서부터 생겨났기에 “성경의 본래적 자리는 교회의 삶 자체”입니다. “하느님 백성에 의하여, 하느님 백성을 위하여,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그 책은 바로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이며, 우리는 이 백성의 신앙 안에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주파수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읽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홀로 이루는 길이 아니라 타인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며 공동체 안에서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는 여정입니다. 하느님 백성 공동체가 함께 걸어가는 길에서 말씀을 접하고 그 안에서 주님의 뜻을 함께 이해하고 실현하는 것입니다.
'말씀살기’ 여정은 매일의 말씀을 읽는 것에서 시작되며, 무엇보다 공동으로 함께 읽고 선포하는 말씀의 작은 모임들과 전례 안에서 굳건해집니다. 우리가 거행하는 미사성제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구분됩니다. 하지만 말씀이시며 동시에 성체이신 예수님을 동일하게 기념하기에, 이 두 전례의 본질은 긴밀히 이어져 있습니다. 말씀살기의 여정은 곧 성체성사를 사는 이들이 얻어 누리는 은총입니다. 또한 말씀살기의 여정은 성체에 대한 공경과 일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념이나 느낌이 아니라 살아계시는 인격이십니다. 따라서 본당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미사 거행과 신심 활동, 성체 강복과 현시 그리고 성체 조배 등은 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장이어야 할 것입니다.
찬미받으소서 여정 - 소박한 삶으로 가난의 영성 회복
지구촌 곳곳이 불과 몇 년 사이에 고통의 땅이 되어 가며 절박한 탄식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신앙의 삶과 방향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이제는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말씀과 피조물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우리 삶의 본질이며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성체를 사는 삶은 주변 이웃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과 함께 걷는 구체적인 여정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고도화된 기술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며, 기술력과 경제력에 모든 희망이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고, 자연의 주인도 될 수 있다는 교만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공동의 집’ 인 지구는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인류가 이렇게 죽음을 향해 내달리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으니,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회개와 반성으로 생명의 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깊은 곳으로부터 가난한 존재임을 깨달아 겸손한 자세로 생태적 영성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힘조차도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게는 절망과 무력감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구원으로 이끄는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을 찬미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희망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말씀살기’와 함께 ‘찬미받으소서 살기’의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제안합니다.
생태를 위한 기도를 봉헌합니다 : 생태를 위한 기도는 상처의 치유와 함께 관계를 회복하고, 하느님과 인간과 모든 피조물의 사랑을 우리 안에서 내면화하는 중요한 실천 사항입니다.
알고 믿어야 합니다 : 깊이 잠식된 소비와 소유 문화에서 벗어나 이 시대의 요청에 따른 실천적 복음화의 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말씀과 교회 문헌, 생태적 삶이 어떤 삶인지 알아야 합니다.
알고 나서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 생태적 회심과 실천은 기도로 시작하여 공부를 통해 알아가고, 그 앎을 신앙인의 소명 의식으로 실천하며 살아 내는 것입니다. 이는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자 목표입니다. 하느님 백성이 모두 모여 기도하고 공부하며 실천하는 이 시간들 속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자리를 찾아 그분의 영광을 드높이는” 기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의 삶에는 세상의 시선으로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하느님의 고귀한 숨결이 함께 합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기꺼이 소박함을 선택하고 불편함을 감수합시다. 우리 삶의 회심을 통한 이웃과 병든 자연을 위해 당당히 이 시대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찬미받으소서’ 여정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걷는 가난의 삶이 말씀과 성체로 힘을 얻고 풍요로워지기를 희망합니다.
춘천교구장 김주영 시몬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