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끈한 친교 이루며 즐거운 신앙생활 누려/ 곤지암·양평·여주성당 등으로 흩어져 신앙생활 했던 신자들/ 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와 함께 공동체 활동 활발히 펼쳐
공소에는 수많은 사연이 얽혀있다.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교리문답을 가르치던 할아버지 사제의 모습이, 마당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웃음이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는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교구 구석구석의 작은 역사들을 찾고, 그 이야기들을 복원하기 위해 교구 내 잊혀져가는 공소들을 탐방한다.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신앙선조들의 이야기는 ‘공소의 재발견’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 산북공소의 과거
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가 상주한다는 점에서 산북공소(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상품리 129)는 교구 내 특별한 공소로 자리한다. 현재는 현대적 외관을 자랑하지만 1983년 6월 공소가 시작된 이래 4번째로 지어진 건물이다.
당시 천진암본당은 김 마리아씨를 선교사로 파견했는데, 그와 신자 5명으로 이뤄진 공동체가 산북면 하품리에 ‘녹암공소’라는 이름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녹암(鹿庵)은 한국교회 창설주역 권철신의 호다. 권철신이 강학회를 열었던 주어사 터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장소가 처음 공소의 이름을 짓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용담리와 백자리 등을 거쳐 조립식 성당을 신자들의 힘으로 신축했고, 이후 퇴촌본당 산북공소로 명칭을 바꿔 2009년 10월 현재 위치한 상품리 현지에서 기공식을 열었던 것이다.
양평-곤지암(약 25km) 가운데 성당이 없어 산북공소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곤지암과 양평, 여주성당 등으로 흩어져 신앙생활을 했던 신자들은 이제 산북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신자 수 250여 명으로 늘어날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 현재 산북공소는 1983년 6월 공소가 시작된 이래 4번째로 지어진 건물로 현대적 외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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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하품리 녹암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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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공소 선교자 故 김 마리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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