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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케냐(하) -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10)"

심유환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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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 캠프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필자.
 

  "오빠, 아버지가 많이 위독하셔! 어떡해…"
 지난 2월 한국에 있는 여동생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이역만리 아프리카 난민캠프에서 아버지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태연한 척 일을 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사무실로 찾아와 하소연하는 난민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버지 걱정 때문에 집중을 못했습니다.

 보다 못한 동료가 "한국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뵙고 오라"고 설득했습니다. 저는 `선교사는 부모님이 돌아가셔야지만 고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상태가 더 악화돼 결국 한국관구장 신부님께 급하게 연락을 드리고 한국에 왔습니다. 의식이 없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기적적으로 아버지께서 의식을 차리셔서 호흡기를 떼고 하루 동안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수도자, 사제가 되는 것은 이해할 테니 사제품을 받고 한국에서 생활하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신 부모님을 뒤로 하고 저는 아프리카로 떠나왔습니다. 떠나면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제로서 부모님께 아무것도 해드리진 못하지만 선교지에서 잘 사는 사제가 돼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게 도와주시고, 욕심 같지만 부디 부모님 임종을 곁에서 지킬 수 있는 은총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부족한 제게 하느님은 아버님 임종을 지킬 수 있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아마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려고 중환자실에서 저를 기다리셨나 봅니다.



 
▲ 길 위에 앉아 있는 난민 캠프 아이들 모습.
 

 선교사 생활, 아니 수도생활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것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실습을 할 때 선교지로 가고 싶어서 그렇게 용을 썼는데 느닷없이 서강대 기숙사 사감을 하라는 명을 받고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서강대 학생들과 함께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모릅니다.

 항상 제 뜻대로 되는 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정말 많은 것을 선물로 주십니다. 선교지에서 한계를 느끼며 내 뜻대로 하지 못하고 좌절을 자주 하지만 놀랍게도 하느님은 제 방식이 아닌 당신 방식으로 꼭 그 무엇인가를 주십니다.

 최근에 이곳으로 새로 온 스페인 출신 예수회 신부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JRS에서 일하는 예수회원들은 2~3년에 한 번씩 다른 난민 캠프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 신부에게 "이제 이곳에서 할 일이 많아지는데 내가 떠나면 참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그 신부는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하느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을 보살피셨고 우리가 떠나더라도 그분 손길은 계속 다른 이를 통해 머무를 테니 이곳에 집착하지 말고 순명하며 주어진 임지로 가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선교지에서 가장 큰 유혹은 `내 왕국`을 만들고 싶어지는 마음입니다. 사업가처럼 여러 성과를 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르면 자아도취가 돼 자신이 마치 큰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어느 순간 하느님도 교회도 없이 혼자 `슈퍼맨`이 돼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도 이 부분이 항상 두려워 늘 깨어 있으려 노력합니다. 선교지 상황에 따라 죽는 날까지 한곳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지만 난민 캠프를 옮겨 다녀야 하는 제 상황은 초심을 지키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예수회원은 한 발을 들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수련원 때부터 줄기차게 들었습니다. 수련원에서 가끔 방을 바꾸고 서원 후 대학원, 철학공동체 생활을 할 때도 1학기 또는 1년에 한 번 짐을 싸서 방을 바꿔야 합니다. 방을 바꾸거나 공동체를 이동하다 보면 짐이 늘어납니다. 늘어나는 짐가방을 보면서 많이 반성을 합니다.

 짐가방 하나와 작은 배낭 하나면 언제나 이동할 수 있도록 늘 제 자신을 살핍니다. 한곳에 정착해 살 수 없는 예수회원 삶의 방식은 저를 항상 깨어 있게 만들어 줍니다. 내년에 또 어디로 갈 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새로운 곳에서 또 몸부림치며 적응을 해야 하고 그 도전들 안에서 하느님을 더 깊게 만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채준호(1955~2012, 예수회 한국관구 초대 관구장) 신부님은 유학을 떠나는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수사님, 유학 가서 열심히 공부하세요. 수사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한 만큼 그곳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방식대로 살려고 하지 마세요. 우리 예수회원이 교회로부터 받은 사명 중에 하나가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성찰하고 분석을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상황이나 현상이 일어나는지 거시적으로 분석하고, 세상에 알리고 끊임없이 도전해야 합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조금씩 알아갑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소중한 사명이 있고 운명이 있습니다. 선교사제, 그리고 수도자는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자기 의지가 아닌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알아듣고 자신의 약점에 더 깊게 위안을 받으며 선교지 사람들과 어울려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시대는 젊은이들에게 더 성공하고 더 강해지고 약점을 숨길 것을 강요하지만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더 행복해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자신을 내어놓고 좌절하며 약한 모습도 보이며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기쁨을 알아가는 선교사의 삶에 더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셨듯이 하느님이 약한 내 안에서 일하게 되셨을 때 진정 우리가 강해질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것이 부족



가톨릭평화신문  201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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