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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호주 시드니(상)- 하느님 나라를 위한 성소의 다양함

성공회 국가에서 가톨릭을 제1종교로 바꾼 호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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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드니대교구 성요셉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신자들과 환한 웃음으로 인사하는 우용국 신부(왼쪽).
 
 
  안녕하세요? 저는 호주 시드니대교구로 파견돼 현지 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는 우용국 실비오 신부입니다.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보다도 짧은 호주의 역사는 1788년 영국인들에 의해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가 세워지면서 시작됐습니다. 오늘날까지 225년에 걸쳐 전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다양한 민족들에 의해 하나의 국가로 발전해왔습니다. 호주는 본래 영국 식민지였던 만큼 영국국교회(성공회) 국가였으나 지금은 가톨릭이 제1종교(가톨릭 26. 성공회 17)로서 교육부터 복지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호주 신자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노인 신부님들에 의하면 과거에는 학교와 직장에서 가톨릭 신자라는 이야기를 쉽게 꺼내질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영국인-성공회 중심 사회에서 가톨릭 신자로서 받아야 하는 차별과 불합리함이 사회 곳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들과 사목자들이 마음을 모아 먼저 지역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고, 무엇보다 학교 교육을 중심으로 복음화 활동을 펼쳐 나가면서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현재 시드니대교구 대부분의 본당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공립학교에 비해 교사들 수준과 교육의 질이 좋으면서도 등록금은 여타 사립학교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인기가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국공립학교에서는 지역 본당에서 파견된 교리봉사자들이 일주일에 한 차례씩 있는 특별활동 시간을 위해 활발하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시드니대교구 주교좌인 세인트메리대성당에서 일 년에 한 차례씩 있는 학교 파견 교리 봉사자들을 위한 특별미사가 봉헌됐습니다. 20년차, 25년차, 40년차 등 근속 봉사자 수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장기근속 봉사자들이 많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75주년 근속 수상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흔이 넘은 연세임에도 지금도 동네 초등학교에서 봉사하신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주신 성소는 실로 다양한 형태로 나눠져 있고 그 임기는 끝이 없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 신자들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엔모어 성당.
 

 언젠가 시드니대교구 사무처장 몬시뇰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납니다. 그때 저는 한국교회, 특히 우리 서울대교구의 발전하는 모습과 사제성소의 풍성함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몬시뇰께서는 "비록 사제들은 부족하지만, 그러나 우리를 도와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말씀에 머리 한쪽을 얻어 맞은 듯했습니다. 그 이후 "우리를 도와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라는 말씀은 이곳 시드니에서의 사목 활동에 큰 지침이 됐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매일매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어느 토요일, 그때 사목하고 있었던 3개 본당 가운데 하나인 엔모어성당에서 신자들의 노동봉사를 필요로 하는 워킹비(Working Bee) 행사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올해 9월이면 딱 100년이 되는 오래된 건물이라 손봐야 할 곳이 많았는데, 이곳저곳 공사하고 씻어내고 페인트도 새로 칠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무척 많았습니다. 사목위원들과 함께 사전 모임을 가지며 계획을 짜면서도 사실 내심 큰 기대를 하진 않았습니다. 개인주의적이라는 서양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평소 느껴온 신자들의 왠지 식어 있는 듯한 모습에서 아마도 참여자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른 아침 7시부터 여러 신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나 나이든 할머니들까지도 음식과 간식거리를 마련해 찾아왔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 몇몇 식구들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빠들은 벽을 부수고 문을 고치는 거친 일을 하는 동안 엄마들은 점심으로 소시지 바비큐를 준비하고, 아이들 역시 친구들과 함께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무릎틀을 걸래질하는 등 그야말로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주님의 집`을 이뤄가는 `교회 공동체`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저는 `도움을 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시드니대교구장 조지 펠 추기경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시드니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다양함`(diversity)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diversity`라는 말에는 `포괄성`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다양함과 그분 부르심의 다양성, 그리고 응답하는 형태의 다양한 모습들…. 복음화란 이 모든 다양함을 그 기조에서 포괄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섞여 있는 시드니에서 사목할 수 있는 경험은 젊은 사제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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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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