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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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호주 시드니(중) -추수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추수할 일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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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용국 신부(서울대교구)


  시드니에 온 지 반 년 정도 지난, 비 오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보좌주교님 중 한 분이신 테리 브레디 주교님께서 전화를 주시고 뉴카슬에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얼마 전 시드니대교구 리버풀본당의 주임이었던 빌 라이트 신부가 뉴카슬교구장으로 임명됐는데, 그날 저녁에 착좌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도 많이 오고 게다가 왕복 여섯 시간 정도의 밤 운전이니, 연로하신 주교님께는 무리라고 생각하셔서 함께 갈만한 젊은 신부를 수소문해 연락하셨던 것입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동행하며 주교님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착좌식 두 시간 전, 저녁 식사 장소인 시내 모처 한 호텔 연회장에 도착했습니다. 호주 각지에서 오신 마흔 명 정도의 주교님께서 모여 계셨는데, 신부는 시드니대교구장을 동행한 데나이 페뇰라 신부 그리고 나, 이렇게 둘만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데나이 신부는 시드니대교구 주교좌성당인 세인트메리대성당의 보좌이고 교구 전례담당이기도 하니 대부분 주교님들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 경우는 호주에 온 지도 얼마 안 되고 또 겉모습이 다른 외국인이니 아무래도 주교님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대교구 소속이며, 영어도 배우면서 시드니-서울 두 교구 간 친목을 도모하고 또 서구교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 왔다는 자기 소개에 여러 교구 주교님들이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주교님들께서는 한국교회 교세를 비롯해 본당들에 관한 일반적 사정, 그리고 신학생 양성 및 서품자들에 대한 현황 등에 대해 주로 물어보셨습니다. 아마도 호주 내 대부분 교구가 성직자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풍성하고 또한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한국교회와 서울대교구의 상황이 부럽고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호주 내 28개 교구 모두 성소자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최근 10년 이상 수품자가 없는 교구도 많고,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인 시드니대교구에서 파견을 보내지 않으면 존속 자체가 어려운 교구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드니대교구 사정이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은퇴 연령이 지났지만 여전히 소임을 맡고 있는 주임 신부들이 많고, 사무처장, 성소국장과 같은 교구 내 중임을 비롯해 경찰 및 군종 사목 역시 본당사목과 병행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해마다 사제들이 은퇴할 때마다 본당들도 그만큼 빈 본당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빈 본당이 늘어나면서 사제 한 명이나 혹은 보좌 신부와 함께 두 명이서 여러 본당을 관리해야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함께 시드니대교구로 파견 온 김세진(서울대교구) 신부의 경우, 현재 펜스허스트와 피크허스트 두 본당에서 사목하고 있습니다. 두 본당 모두 교구 내 여타 본당에 비해 작은 규모가 아니며 오히려 큰 편에 속합니다. 본당마다 사목회가 따로 조직돼 있고, 사무실도 개별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두 본당 모두 초등학교가 있으며, 한곳에는 중ㆍ고등학교도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본당 구역 내에 위치한 양로원 네 곳을 각각 2주에 한 번씩 방문해서 미사를 집전합니다. 교우들의 평신도사도직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참여가 있기에 양 본당에 걸친 사목활동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사집전이라는 사제 고유의 활동은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주말마다 두 본당을 왔다갔다 하면서 다섯 대의 미사와 두 번의 유아세례를 집전하고 있습니다. 서구교회가 점점 그 열기가 사그라지고 있고 신자들의 신앙생활 참여도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추수해야 할 것은 많고 일꾼들은 부족합니다. 추수해야 할 것을 때에 맞춰 수확하지 못하고 방치한다면 풍성한 결실은 계속 이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시드니에서 사목하며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시드니에 와서 첫 부임지였던 파이브독본당 사제관에는 오래된 신문 한쪽 면을 스크랩해 액자에 넣어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시드니대교구 서품식을 앞두고, 수품자들의 개별 사진과 간략한 인적사항을 전면에 걸쳐 소개한 1970년대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한 페이지였습니다. 수품자 정보가 일반 신문에 소개됐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24명이라는 당시 수품자 숫자에 더욱 놀라웠고 또 안타까웠습니다. 지금 시드니 인구가 400만 정도입니다. 30년 전 그 당시는 백호주의도 지속되던 시절이라 그 수가 훨씬 적었을 텐데, 그럼에도 수품자 스물 넷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지금의 우리 한국교회 모습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과연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980~90년대 들어와서 성소자가 감소했고, 급기야는 십여 년 동안 단 한 명의 수품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위기를 겪으면서 뒤늦게 성소자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오면서 그나마 몇 년 전부터는 그 결실을 조금씩 맺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시드니대교구는 해마다 대략 3~4명 정도의 사제 서품자를 내고 있습니다. 정말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 겨우 몇 명의 추수꾼을 힘겹게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시드니대교구에서 활동하면서, 어쩌면 우리 한국교회의 가까운 미래 모습을 미리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물론 이 방정맞은 생각은 그저 기우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드니에서 보고 느끼고 배우는 모든 것들은 앞으로의 사목활동에 좋은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이곳 시드니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 시드니대교구 캐링바본당에서 유아세례를 주고 있는 우용국 신부.
 


 
▲ 교회가 운영하는 초등학교 행사에서 유치부 아이들과 함께한 김세진 신부.
 


가톨릭평화신문  201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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