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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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호주 시드니(하)- 세상은 참 좁습니다

우용국 신부(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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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용국 신부가 시드니 캐링바성당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십수 년 전, 한 외국인 수녀님께서 어느 젊은 간호사에게 `성소 모임`에 나가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그 간호사는 성경에 관해 공부하는 `성서 모임`이라고 알아듣고 나가봤더니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간호사는 성소 모임에 계속 나가게 됐고, 결국에는 입회를 하고 종신서원을 거쳐 가난한 이웃과 임종을 앞둔 병자들을 위해 열심히 사도직활동에 임하는 수도자가 됐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고, 그리고 그 부르심에 잘 응답할 때 그 열매는 참으로 아름답고 향기롭게 맺어지는 법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바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the Little Company of Mary)의 호주 출신 메리 트레이시 수녀님, 그리고 박 모니카 수녀님입니다. 메리 수녀님은 1970~80년대 그 어려웠던 시절에 기꺼이 한국으로 오셔서 30년 동안 의사로서, 그리고 수도자로서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위해 헌신하셨던 분입니다.

 신학생 시절, 행려자들을 위한 병원인 요셉의원에서 잠시 체험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메리 수녀님을 보면서 마음 한편으로 선교활동에 대한 열망을 조금씩 키워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간호사였던 박 모니카 수녀님을 통해서는 성소에 대한 첫 마음을 다시금 살펴보고 조금씩 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언제나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조력자로 보내주고 계십니다.

 지난 1월 시드니대교구장님의 인사이동을 명 받고 시드니 남쪽에 위치한 캐링바본당으로 부임해 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이곳에서 메리 수녀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은퇴하신 후 호주로 돌아오셨는데, 바로 성당 근처에 있는 공동체에 계셨던 것입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한국을 떠나 노년을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던 중, 바로 그곳 한국에서 온 젊은 사제가 고향 본당으로 오게 됐으니 `세상은 참 좁아요` 하시는 수녀님의 첫마디 말씀이 정말로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수녀님께서는 가난한 나라 한국으로 소임을 받고선 멜버른의대에 들어가 공부하고 의사가 되셨습니다. 그때 함께 소임받았던 여러 동료들이 공부가 힘들어 중간에 성소를 포기했다며 안타까워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하고 복음화가 이뤄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 그리고 희생이 있어야 했는지, 이 좁은 머리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늘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시드니와 서울 간 시차는 한 시간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계절로는 반년의 차이가 있어서 지금은 겨울이 점점 깊어가는 때입니다. 본당 내 학교들도 겨울방학에 들어가고, 그래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일 년 중 그 어느 때보다도 긴급 전화가 많아질 때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환절기에 접어들면서 병자성사와 장례미사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늦은 밤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올 때가 자주 있는데, 임종을 앞두고 급하게 사제를 찾는 경우입니다.

 처음에는 얄미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평소에는 성당에 전혀 나오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제 다급해지니 찾는구나, 게다가 한참 자고 있을 때만 찾는구나" 하는 지극히 게으른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저분들이 이제 곧 주님 곁으로 갈 텐데, 조금이라도 잘 해드려야지 가서 내 얘기를 좀 잘 해드릴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귀찮은 일은 기꺼운 일로 바뀌었습니다. 모처럼 하늘에 공덕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까요.

 제가 사목하는 캐링바성당이 위치한 이 지역은 서덜랜드 샤이어라는 곳으로, 시드니에서는 앵글로색슨족의 마지막 거주지라고 불릴 만큼 주민 대부분이 백인들로 이뤄진 곳입니다. 여러 민족이 함께 섞여 어울려 살고 있는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고, 또한 영국 본토에서 건너온 백인들이 많은 지역인 만큼 아무래도 가톨릭보다는 영국 국교회(성공회) 신자 비율이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양로원을 비롯한 노인복지시설들도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곳이 많고, 그래서 검정머리 젊은 동양인 신부가 성직자 복장으로 방문할 때면 쉽게 주목받는 곳입니다. 물론 불편해하는 시선을 느낄 때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친절하게 잘 맞아주시고 또한 부러운 눈길을 보내기도 합니다. 현재 호주사회에서 성공회 교회들은 거의 활동이 멈춰 있을 만큼 쇠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미사를 드릴 때면 성공회 신자들도 많이 찾아와서 함께 합니다. 물론 성체를 함께 나눌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 하느님의 한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서양사람이든 동양사람이든, 영국교회든 가톨릭교회든 그 껍데기는 비록 달라도,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 같은 식구들이기에 구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비록 크고 넓게 보일지라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작고 아담한 동산일 것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을 언젠가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날 것이며, 종래에는 모두 한 곳에서 다시 만나지 않겠습니까. 비록 겉모습은 조금씩 다르고, 말도 사고방식도 차이점이 있지만, 그러나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들로 이뤄진 한 가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서로 힘껏 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다양한 문화적ㆍ사회적 배경을 가진 민족들로 이뤄진 시드니에서의 여러 사목활동을 통해 다양성과 포괄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영어로 `diversity` 라는 말에는 이 두 가지 뜻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서로 다른 그 많은 것들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그 다양한 것들을 한데 포괄할 수 있는, 바로 그 영역의 확장이 복음화가 아닐까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실현은 소통(communion: 친교, 영성체 모두 같은 뜻입니다)을 통해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포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뤄진다는 사실을 매일 매일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차단하고 배타적이 되기에는, 우리 사는 세상은 실로 너무나 좁은 곳입니다.

 더욱 더 많은 후배 신부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세계 곳곳의 많은 교구들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한국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통해서도 늘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늘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습니다. 이 귀중한 기회를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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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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