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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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칠레(중)- 배운 것이 더 많은 선교사 생활

김종근 신부(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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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미사를 집전하는 필자.
 
   15~16세기는 유럽이 중남미를 정복하던 시기다. 그래서 칠레도 스페인어를 쓴다. 하지만 중남미 모든 나라에는 고유한 언어가 있다. 칠레 원주민을 `마푸체`(mapuche)라고 한다. 마푸는 땅, 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즉 `땅의 사람들`로, 농업과 땅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란 의미다.

 13년 가량 마푸체들과 살았다. 유럽이 남미 정복을 끝낸 것이 불과 100여 년 전이다. 마푸체는 아직도 정복되지 않은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 칠레 정부와 갈등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칠레 국민이다. 북미에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는 것처럼, 마푸체들은 칠레 정부에서 인정한 고유 영토에서 산다. 푸에르토 사베드라(Puerto savedra)라는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우리나라 군(郡) 넓이다.

 그 지역 성당에 발령받은 때가 1997년이었다. 부족 지역에서 지내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이 많았다. 틀어진 일이 더 많았다. 젊은 혈기에 뭔가 해보려고 했는데 분탕질 치는 것에 불과했다. 젊은 혈기에 잘난 척하는 선교사가 왔으니, 마을 입장에서는 내가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외로움을 넘어설 기쁨과 행복도 컸다는 점이다.

 부족 마을에는 전기도 수도도 없었다. 칠레의 밤하늘은 환상적이다. 거의 1년 내내 하늘을 관찰할 수 있어 칠레에는 세계적 천문대가 밀집해 있다. 지평선부터 말 그대로 별천지다. 별빛에 눈이 부셔 하늘을 못 쳐다볼 정도라면 상상할 수 있을까. 별들의 장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 집 틈새에 집을 짓고 새끼를 치는 아빠 새, 엄마 새를 보며 외로움을 달랬다. 바람소리와 풀냄새, 물소리, 매일 조금씩 자라는 꽃과 풀이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줬다. 자연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절대자의 자상한 손길을 느꼈다. 교리공부라든가 하느님을 구체적으로 부르지 않아도 하느님 속에 묻혀 있는 삶이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들이 땅의 사람들인 것처럼, 땅은 넉넉하고 인구는 적었다.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경작할 수 있으면 모두 자기 경작지다. 가족 중에 아이가 성장하면 필요한 곳에 집을 짓고 땅을 일궈 사는 식이다. 이들은 주로 감자 농사를 지었다. 주식은 감자와 밀이다.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식구가 먹을 양식이다. 많이 수확해도 골칫거리(?)다. 남은 감자와 밀은 가축들이 먹었다. 땅은 어머니, 거룩한 젖줄일 뿐이다. 내가 이 세상을 마치면 내 후손이 먹고사는 거룩한 곳으로 여겼다. 사고판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이들의 장례문화는 우리와 조금 달랐다. 이들은 식탁에 앉는 문화생활을 하는데, 식탁과 긴 의자를 싣고 아기들을 태우고는 부모들이 2~3시간 소달구지를 몰고 상가에 온다. 넓은 지역에 관을 놓고 주위로 원형을 이뤄 테이블을 놓고 집집이 캠프를 차린다. 그런데 자기 먹을거리는 모두 직접 가져온다. 식사 때가 되자 한 가정이 감자와 빵, 고기를 한 덩이씩 접시 위에 놓더니 옆집에 갖다 준다. 한 집이 접시를 돌릴 때쯤 모든 집이 옆집으로 음식을 보낸다. 예를 들어 스무 가정이 모였으면 한 가정이 19접시를 돌리는 것이다. 그렇게 19집에 다 나눴는데도 내 식탁에 먹을 것이 남아 있다. 오병이어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두부 한 모를 이웃과 나누던 우리 옛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상가에서 혼자 오는 사람에게는 음식을 대접한다. 이 모습을 보며 느낀 것이 많았다. 그들 신앙의 깊이가 나보다 훨씬 깊다는 생각이었다. 이들은 물론 외형적으로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주일미사나 성경공부도 거의 못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미사도 견진도 없는데,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나? 가식 아닌가`하고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신앙 실천은 우리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모습이었다.

 장례식에서는 문상객들이 죽은 이의 관 앞에 앉아 2~3시간을 보낸다. 나는 처음엔 한국의 `연도`라는 아름다운 풍습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돌아가신 분을 위해 기도합시다"하고 말하고 노래를 하고, 성경을 읽게 했다. 그런데 어느날 공소 회장 집에 장례가 나서 찾아갔더니, 공소회장이 "개인적으로 기도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이유를 묻자 "지금까지 기도를 잘 해왔는데, 신부님 때문에 시끄러웠다. 기도하는데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창피함과 분노가 밀려왔다. 공소회장을 바꿀까도 생각했다. 너무 기가 막혀 다른 분에게 물었더니 "신부님이 우리를 이끈 정성은 좋은데, 우리에겐 큰 방해였다. 우리가 모두 기도하고 있는데 신부님이 우리 기도를 막았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죽은 이를 어릴 때부터 봐왔고, 학교생활도 같이 했고, 심지어 짝사랑도 하면서 수십 년을 같이 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례식 때 2~3시간 동안 그 추억을 반추하는 것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 앞이지만 용서를 구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또 `하느님 이제 이 형제(자매)를 당신 품에 돌려드립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영원한 생명을 그에게 주십시오` 하고 산 자, 죽은 자 경계없이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장례식을 통해 선교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들은 선교사 없이도 이웃과 나누고 있었다. 성사를 받았네, 견진을 했네 재단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배운 것이 더 많았다. 선교사로 지내며 그들 속에 오신 하느님, 하느님 사랑을 내가 구경하고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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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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