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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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과테말라(중) "선교는 고생" 그건 오해랍니다

박효원 선교사(도르테아, 과테말라 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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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사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산다. 사랑스러운 선교지 아이들 모습.
 


 
▲ 본당 축일 행사 때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필자.
 
조금씩 언어가 익숙해지면서 설립된 지 400년 가까이 된 본당에서 일을 하게 됐다. 가난한 시골 동네라 본당 사정이 어려워 직원을 둘 수 없었다. 혼자 많은 일을 해내야 했다.

 사무장 업무를 하다가 미사 준비를 하러 뛰어가야 했고 가정방문을 다니다 미사 시작을 알리는 종을 치러 성당으로 돌아와야 했다. 공소도 14개나 됐다. 명색이 도시에 편입된 지역인데도 하루에 버스는 4번만 다니고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다.

 본당은 가난했다. 처음 6개월은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해가 지면 어둠 속에서 지내야 했다. 성당 건물만 문화재 관리청에서 전기요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사제관을 비롯한 다른 건물은 해가 지면 어둠에 갇혔다.

 해발 2800미터 산속 마을이라 밤이 되면 추워서 담요를 둘둘 말고 자야 했다. 덕분에 냉장고는 필요없었다. 가능하면 모든 업무를 일찍 끝냈다. 언제나 촛불만 켠 채 오붓하고 로맨틱한 저녁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전례 성무일도는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마쳐야 했다.

 몇 달 만에 후원자를 구해 전기요금을 내고 감격스러운 저녁을 맞았지만 바로 다음날 동네 전기선이 망가져 결국 한 달을 더 촛불에 의지해 밤을 보내야 했다. 본당 신부님 차량 운행비도 나오지 않는 열악한 재정 상황 때문에 결국 신부님과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신부님은 강연을 다니셨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때문에 동네 주민들에게 `돈 벌러 온 사람`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번 돈으로 신학생들 차비도 챙겨주고 사제서품식 때 전례복도 마련해줬다.

 신학생들은 형편이 어려웠다. 돈이 없어 2년째 집을 못가는 이도 있었고 사제품을 받을 때 전례복조차 살 형편이 안돼 선배 신부님 것을 얻으러 다녔다. 그런 모습이 늘 마음에 걸렸다. 2년여 동안 내가 활동하던 본당으로 실습을 오던 신학생들 전례복을 마련해줄 수 있어서 더 뿌듯했고 기뻐하는 신학생들 모습을 보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쌓인 피곤도 사라졌다.

 하루 한 번은 성당 앞에 사시는 할머니와 따듯한 양지에 앉아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을 구경했다. 할머니가 동네 아줌마들 흉을 보면 듣는 게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할머니는 어느 집 딸내미가 신부님 앞에서 너무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끌끌 혀를 차기도 했고, 어느 집 아들내미는 미사참례는 안 하면서 미사에 오는 아가씨들 유혹하려 미사 마칠 즈음에 성당 앞 광장에 멋을 잔뜩 내고 앉아 있다고도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식도 없으신 할머니는 조카가 타다 주는 극빈자 연금으로 생활했다. 근데 알고 보니 그동안 조카가 연금의 반 이상을 몰래 써왔다. 그래서 본당에서 대신 찾아 드렸더니 한 달 생활비가 두 배로 늘었다고 행복해 하시면서 과자를 사주기도 했다.

 옆집에는 장애아를 키우는 아주머니가 살고 있었다. 본당에서 아이 옷도 챙겨주고 약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너무 자주 옷을 달라고 요청했다. 하도 이상해서 집을 방문해 보니 얻어 온 옷을 한 번 입고는 빨지 않고 수북이 쌓아뒀다.

 갈아입을 옷이 없으면 본당에 옷을 달라고 했던 것이다. 옷 무더기를 보니 기가 막혔다. 당장 빨래를 했다. 마당 가득 빨래들이 마치 만국기처럼 펄럭였다.

 성당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어르신들이 찾아오신다. 예물로 계란이나 우유, 감자를 가져오시는 분들도 많다. 하루는 늘 미사예물로 우유를 가져오시던 할머니가 "오늘은 연미사를 봉헌하고 싶다"며 망자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셨다. 여러 사람 이름을 부르시더니 "몇 명이냐?"고 물으셨다. 아홉 분이라고 하자 한 분 이름을 더 부르셨다. 그러더니 너무나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1달러(1100원)짜리 한 장을 내미셨다.

 어느 날 걸어서 4시간 넘게 걸리는 공소에 있는 남성 신자들이 공소 수호성인 축일이라며 무거운 통나무 성인상을 메고 걸어 내려왔다. 힘들게 성인상을 메고 내려온 신자들의 신앙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존경심마저 들었다. 미사 준비를 끝내고 신자석을 봤더니 공소 신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성당 앞 가게에 가 보니 사이좋게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미사가 곧 시작된다"고 알렸더니 너무도 수줍은 얼굴로 "성인만 미사에 참례하시면 되지 우리까지 미사 참례할 필요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공소가 너무 많고 또 멀어서 1년에 몇 번 방문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도 공소 신자들은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며 신심을 잃지 않고 산다. 가끔 독특한 신심활동으로 당황하게 만들고, 엄청난 인적ㆍ물적 공세를 펼치고 있는 개신교 선교사들과 친해져서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부족한 내 믿음으로는 한없이 존경스러운 분들이시다. 교리교사가 많이 부족해 선교사들이 많이 와주었으면 하고 바라시는 그분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기도 하다.

 선교지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그 순간은 당황스럽지만 돌아보면 킥킥거리고 웃게 되는 일들이 많다. 선교지에서 만난 분들은 내게 새로운 가족, 벗이 돼 주셨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는 이유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체가 복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된다.

 선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다. 선교사는 많은 사랑을 받는다. 고생한다고 걱정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쑥스럽고 오해를 하시는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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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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