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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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하> 한류 덕에 ''기다리는 선교''로 변화

박효원(도르테아, 과테말라교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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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청년들은 나보다 한국 아이돌 그룹을 더 잘 안다.
한류 열풍은 선교에 큰 도움이 된다.
사진은 청년대회를 즐기고 있는 파나마 청년들.
 


 
▲ 콜롬비아교회 현지 신부님과 함께하고 있는 필자.
 

처음 중남미에 갔을 때만 해도 그곳 사람들에게 한국은 6ㆍ25전쟁을 제외하면 알려진 게 없는 나라였다.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도 남과 북으로 분단돼 있다는 사실 말고는 그다지 아는 게 없었다.

 대부분은 한국을 중국의 한 부분쯤으로 알았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나를 "중국인"이라고 불렀다. 하느님 말씀을 나누고자 떠난 길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를 전혀 모르는 모습을 보면 심통이 나기도 했다. 그런 그들도 우리나라 대기업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삼성과 현대, 대우의 나라에서 왔다"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2002년. 드디어 때가 왔다. 월드컵은 놀라운 효과를 불러왔다. 월드컵 개최만으로 그들은 `한국은 믿을 만한 나라`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급기야 4강에 진출하면서 한국은 갑자기 `훌륭한 나라`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전에는 무조건 중국ㆍ일본인 취급을 하던 사람들도 "네가 한국인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축구를 정말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져 음료수를 사주기도 했다.

 요즘은 너무나 대접이 달라져 오히려 놀라게 된다. 하루에 버스가 몇 번 다니지 않고 인터넷도 원활하지 않은 산골마을 젊은이들이 내게 다가와 `동방신기`에 대해 물어본다. 나도 이름을 잘 모르는 `SS501`을 이야기하면 난감하기도 하다. 한국 아이돌 그룹을 잘 모르는 내게 어떤 연예인이 군대에 있는지 설명을 해줄 때면 외계어를 듣는 기분이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한국 드라마도 그 친구들 덕에 다시 찾아보게 됐다.

 중남미인들은 유럽 선교사들, 특히 스페인 출신 선교사들을 `정복자의 후예`라고 생각해 자연스럽게 경계심을 품는다. 그에 반해 한국 선교사들은 자유롭다. 얼굴색도 비슷하고 먹거리도 그들과 묘하게 비슷하다. 산악지역 원주민에게는 몽고 반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서로 좋은 호기심을 갖고 있어 첫 만남에도 격의 없이 다가설 수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은 현지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한인 선교사를 찾아오도록 하는 `신나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인이 자기 마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워한다. 궁금했던 점을 폭포처럼 쏟아내고 흥이 돋아지면 한국 노래를 하나 불러달라고 한다.

 이럴 때마다 불러주는 노래가 있다. 바로 `주님의 기도`다. 음치라 미안한 생각이 들 만큼 내 맘대로 불러도 그들은 환호성을 보내준다. 화답을 한다며 자신들의 `주님의 기도`를 불러주기도 한다.

 성직자와 수도자, 선교사가 턱없이 부족해 늘 안타까운 선교지에서 한류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찾아와주는 다양한 젊은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묘한 방법으로 함께 해주시는 하느님이 느껴진다.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생각지도 않은 한류 덕에 젊은이들에게는 `찾아가는 선교`뿐 아니라 `기다리는 선교`도 가능해졌다. 한류 덕에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그렇게 젊은이들이 모이면 더 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그러다가 너끈하게 청년팀을 꾸릴 수 있게 됐다.

 문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더 반갑게 대한다. 축구에 열광하는 만큼 한국 아이돌 그룹의 춤과 음악에도 환호성을 지른다. 그렇게 멋진 나라에서 그토록 멋진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한국은 선망의 대상이다. 젊은이들은 한국 노래와 드라마를 줄줄 외운다. 나름 팬클럽도 있다. 본당 교리교사 청년들은 날씬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내게 점잖은 목소리로 "한국 사람이라고 다 멋진 건 아니다"며 놀리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심스럽다. 그들보다 잘사는 나라에서 온 티를 내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아닌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면 그 또한 선교의 걸림돌이 된다. 일방적으로 베풀었던 예전 강대국 선교사들이 활동할 때 있었던 `밀가루 신자`와 같은 부작용이 생길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젊은이들 마음이 건강하다는 것. 한국에 휴가를 가려고 하면 자국 특산품을 선물로 챙겨가라며 자랑스럽게 내민다. 아이돌 앨범에 사인을 받아 갖다 달라는 부탁이 함께 따라온다.

 선교 현장은 늘 생동감이 있다. 계획한 대로 이뤄지는 곳이 아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계획하든 하느님은 늘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멋지고 새로운 방법으로 선교사들을 초대하신다. 내 짧은 지식에서 나오는 부족함을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풀어내주신다.

 하느님 말씀은 이렇게 새로운 생명이 돼 흐른다. 엉뚱한 호기심에 시작된 관계가 하느님을 나누고 하느님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의 멋진 모임이 된 것이다. 이전에 활동하던 본당 성전은 마산교구가 건립했다. 지금은 현지 사제가 사목하지만 본당 이름은 여전히 `성 김대건 본당`이다. 본당 청년들은 인터넷을 통해 공부한 김대건 신부 생애를 김대건 신부 축일에 연극으로 꾸며 신자들에게 보여준다. 본당 수호성인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한 청년들의 자발적 행동이었다.

 하느님은 늘 우리 모두를 초대해 이렇듯 멋지게 신앙으로 하나되게 해주신다. 이런 멋진 하느님을 어찌 자랑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 그래서 선교는 멋진 분을 알고 있음을 뽐내고 자랑하는, 신명나는 일이라 감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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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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