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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페루(상) 새로운 도전 희망을 품고 - 박규식 신부(의정부교구)

''맨땅에 헤딩하기''에서 발견한 기쁨과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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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에서 언어 때문에 힘들었지만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을 생각하면서 이겨낼 수 있었다.
사진은 현지 본당 수호성인 `기적의 주님`(Senor del los milagros).
 


 
▲ 나에게 해외선교는 새로운 도전이자 희망이었다.
사진은 견진성사를 집전한 후 복사들과 함께 있는 필자.
 
 
`치노`(chino). 중국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처음 페루에 왔을 때 이곳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들은 눈이 작고 찢어진 사람들을 "치노"라고 부릅니다. 난 한국 사람인데….

 지구 반대편 페루에 온 지 4년 하고도 반이 지났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인데 금방도 흘렀습니다. 5년 전 제게는 새로운 도전과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교였습니다.

 서른아홉이던 저는 마흔을 앞두고 앞으로 삶을 고민하게 됐고, 남은 사제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신학생 때 잠시 꿈꿨던 선교사의 삶이 다시 기억났습니다.

 20년 동안 잊고 살았던 선교에 대한 꿈을 다시 꾸게 된 것은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외국인 평신도 선교사들 영향도 있었지만 10년 동안 사제로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정체돼 있는 제 모습과 현실에 안주하려는 유혹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삶이 선교였습니다. 낯선 땅에 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교사들의 삶을 보며 제 안에 잠들어 있던 오래전 꿈이 다시 깨어난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도전 그리고 희망은 저를 한국 정반대편 땅을 밟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사람들 모습도 음식도 언어도 모두가 처음 접하는 것이었습니다. 낯선 것을 보면 경계심을 갖는 것처럼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제 삶은 긴장 그 자체였습니다.

 이곳 트루히요(Trujillo)교구에 와서 신학교에 머물렀습니다. 신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언어(스페인어)를 배우라는 이곳 주교님의 배려였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지 20년 만에 다시 신학교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이 저의 새로운 도전은 시작됐습니다. 5개월 남짓 신학교에서 살며 학원에 다니고 개인 교습도 받으며 가장 급한 스페인어를 배웠습니다. `맨땅에 헤딩하기`라는 표현이 딱 맞았습니다.

 선생님들은 한국말을 모르고 저는 스페인 말을 모르다 보니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손짓 몸짓이었습니다. 잘 안 되는 영어로 어렵게 어렵게 단어를 하나하나 배워 갔습니다.

 교수 신부님들과 밥을 먹을 때면 신부님들은 제게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었습니다. 또 식당에 있는 물건들을 가리키며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통에 밥 먹는 시간조차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공부가 아니라 딱딱해진 돌머리에 글자를 새겨 넣는 것처럼 힘든 일이었습니다. 말을 못 알아듣고 하고 싶은 말을 못하니 바보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가끔은 이곳 사람들이 저를 정말 바보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공부한 단어를 알아들을 때면 마치 길에서 공돈을 주운 것처럼 기뻤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선교사의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언어였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수많은 어려움과 재미를 함께 느끼며 새로운 도전은 희망을 품고 이어져 갔습니다.

 힘들 때마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강생`였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얼마나 힘들고 답답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천상의 언어 대신 인간의 언어를, 천상 낙원의 삶에서 지상의 삶으로, 거룩함에서 비천함으로…

 강생하신 하느님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상상해 보면 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느끼는 그런 위안이었습니다. 나는 그래도 그보다는 나으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아마도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시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을까요? 누리던 많은 편리함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을까요? 제 멘토이신 그분이 가셨던 길이기에 따라가 보려 합니다.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제게는 새로운 도전이며 희망입니다. 그럼 다음 주엔 첫 본당 부임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든 분이 한 주간 행복하시길 지구 반대편에서 기원합니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031-21-0544-171  예금주,  박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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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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