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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 알토(1) 선교지는 신앙 배움터 -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절벽에서도 새 길 열어주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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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선교지에서 온 편지`를 썼던 김효진 수녀가 다시 한 번 평화신문에 원고를 보내왔다. 볼리비아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인 엘 알토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 수녀는 "`선교지에서 온 편지`를 통해 좀 더 많은 이들이 해외선교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김 수녀의 편지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 알토의 시장은 늘 활기가 넘친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가 가득한 모습은 한국 시골 장터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덤을 주거나 깎아 주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 포장이 안 된 알토의 도로 모습.
낡은 승합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의자와 함께 붕 떠올라 천장에 머리가 부딪히기도 한다.
 

 
▲ 길을 걷고 있는 김효진 수녀.
 

 알토의 교통수단은 폐차 직전의 승합차다. 달리다가 시동이 꺼지거나 타이어가 터지는 일이 다반사다. 달리다가 문짝이 떨어져 나가면 얼른 차를 세워 떨어진 문짝을 다시 끼워 넣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달린다.

 유리가 없는 차창으로 흙먼지와 빗물이 고스란히 들어와 얼굴을 때리고 의자가 제대로 붙어 있지 않아 비포장 험한 돌길을 달리다 보면 의자와 함께 붕 날아올라 천장에 머리가 부딪히기 일쑤다.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차를 타고 해발 1000m를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마치 곡예를 하는 느낌이다.

 이곳은 버스 정류장이 따로 없다. 그래서 타고 내릴 때 서로 뒤엉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벌떼처럼 달려드는 인파에 치여 자리다툼에 휘말리곤 한다. 특히 아줌마들이 무섭다. 아줌마들이 힘으로 밀고 당기면 다른 이들은 맥없이 나가떨어지고 만다. 이렇게 서로가 아우성치는 한복판에 서 있다 보면 나는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무법지대에 와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처음에는 버스 타는 곳을 몰라 무척 헤맸다. 장이 서는 날마다 제멋대로 바뀌는 버스 노선 때문에 엉뚱한 곳에서 마냥 버스를 기다리기도 했고 우리 동네 팻말이 붙은 버스를 탔는데도 낯선 동네에 내린 어느 날은 개떼를 만나 혼쭐이 나기도 했다. 일단 우리 동네로 가는 버스가 없기 때문에 대충 방향을 잡고 걸어서 돌아오기도 한다.

 동네 주민들은 "걸어 다닐 때 사나운 개떼를 만날 수 있으니 항상 지팡이나 돌멩이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알토 원주민은 늘 시위를 하는데 모든 길목을 다 막아버리고 한다. 이런 날 길을 나서면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거리에서 발이 묶이곤 한다. 이들에게는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이 내게는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치며 배워나가야 하는 것들이다.

 알토 생활 3년 만에 시장에서 배추를 발견했다. 마치 깊은 산 속에서 산삼을 캔 것처럼 반갑고 기뻤다. 당장 세 포기를 사서 김치를 담갔다. 비록 심지가 굵고 잎이 별로 없는 배추였지만 김치통을 볼 때마다 뿌듯했다. 시장에는 파도 있었다. 그동안 파로 알고 먹었던 것은 양파 줄기였다.

 이곳은 과일이나 야채가 저렴한 편이어서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다. 벌레가 많고 깨끗하지 못해 가끔은 먹고 배가 아프다. 살모넬라균에 감염돼 고생을 하기도 한다. 덜 익은 돼지고기를 먹고 일주일 내내 설사를 한 적도 있고, 풍토병에 걸렸는데 단순 감기인줄 알고 약만 먹고 버티다가 고열로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시장은 늘 활기가 넘친다. 처음 보는 과일, 야채를 보면 신기했고 거리에서 한국 노래가 흘러나오고 한국 드라마가 방송되면 잠시 고향 생각에 젖기도 했다. 강아지나 고양이, 닭과 오리장수가 즐비한 골목과 방금 따온 과일과 야채가 가득한 모습은 우리네 시골 장터와 다를 게 없다.

 사람 구경도 하고 때때로 물건값을 깎으려고 실랑이를 벌이며 이곳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곳 상인들은 한국처럼 덤을 주지도 깎아 주지도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가끔은 억지를 부려본다. 한국의 정을 이곳에서도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몸소 체험해가며 하나하나 발견하고 알아가는 것은 선교지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때로는 알지도 못하는 천사가 나타나 딱 필요한 시점에 도움을 준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꼭 먹을 일이 생긴다.

 선교지에서 삶은 날마다 내가 그분과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신앙의 장터다. 아무것도 일궈지지 않은 미지의 땅에서 하느님의 돌보심을 느끼며 날마다 그분의 현존 안에서 살아간다. 내게는 백 배의 즐거움이다.

 이곳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곳이다. 내일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절벽 옆 좁은 길을 걷고 있는



가톨릭평화신문  201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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