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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 알토(2) 알토 본당들의 현실-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폐허 같았던 성당이 아름답게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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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토 신자들은 평소에는 신앙생활을 등한시하지만 세례식이나 대축일 미사에는 참례한다.
사진은 세례식을 마치고 함께하고 있는 모습.
 

 
▲ 청년 신자들에게 `본당 주인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함께 청소를 하며 성당을 단장했다.
 


 
▲ 본당의 날 행사 후 아이들과 함께 촛불을 끄는 주교님.
 

알토 선교지에 도착했을 때 본당 신자들은 "간절한 기도 덕분에 수녀님이 온 것"이라며 기뻐하고 반겨줬다. 본당은 가난했다. 알토교구는 사도직 활동비나 사제 생활비가 없다. 모든 것을 본당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

 우리 본당도 지원이 전혀 없었다. 청년 신자들이 많은 본당이어서 봉헌금도 기대할 수 없었다. 교무금은 아예 없었다. 초를 만들어 판매하고, 폐지ㆍ플라스틱을 모아 팔아 본당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주일미사를 집전하러 오는 신부님은 가뜩이나 가난한 본당에서 그나마 쓸 만한 물건들을 호시탐탐 챙긴다. 마당에 세워져 있는 손수레를 빌려 가기도 하고, 성당 구석에 놓여 있던 페인트통이나 가스난로를 보고는 "다음에 사줄 테니 우선 빌려 달라"고 한다. 때로는 창고에 보관해 놓은 문짝과 사다리를 가져가기도 했다. 어느 날 본당 청년들이 부랴부랴 달려와 수녀원 문을 두드리며 "지금 신부님이 교육용 TV를 가지러 오고 있으니 빨리 숨겨야 한다"고 다급하게 말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교리실 지붕과 기둥을 떼어가 순식간에 교리실 하나가 폐허가 된 적도 있었다. 신자들은 "신부님은 한번 빌려간 것은 절대로 돌려 준 적이 없다"며 "잃어버린 셈 치고 잊어 버려라"고 귀띔하며 위로를 해줬다. 본당 사목회장이 "학교에서 무너뜨린 담을 우리가 고쳐줘야 한다"며 학교 편을 들고 나선 일도 있다.

 이런 본당 상황을 보면서 나날이 한숨이 늘어갔다. 도대체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본당 큰 축제날에는 힘을 모아 저력을 발휘하는 신자들을 보며 입이 벌어지기도 했다.

 본당 설립 15주년이 됐다. 신부님이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왔고 청년들은 젤리와 과자를 만들었다. 우리는 제대초와 꽃을 준비했고 아이들은 춤과 연극을 준비했다. 평소 주일미사에 오지 않던 어른 신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바로 청년들 부모들이었다. 저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함께 해나가니 미사가 중심이 된 풍성한 나눔과 기쁨의 잔치가 된 것이다.

 볼리비아는 인구의 95가 가톨릭 신자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지만 실제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는 10 미만이다. 대부분 냉담교우라고 할 수 있다.

 알토 지역 대부분 본당에는 사제가 축제 때에만 미사를 봉헌하고 돌아가서 신자들도 축일 미사에만 참례하는 신앙생활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었다고 한다. 사제 부족으로 인해 신자들이 `축제 신자`가 되든가, 아니면 본의 아니게 `열심히 하는 냉담교우`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 의식을 바꿔 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신자들에게 주일미사 참례 의무와 성사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본당 주인은 바로 신자들이라는 것을 일깨웠다. 신자들이 본당에 대한 애정이 있고 봉사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했지만 억지로 강요할 수 없었다.

 청년들에게 먼저 함께 청소를 하자고 했다. 성당 마당을 깨끗이 청소하고 깨진 유리창을 갈아 끼웠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씻어내고 교리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두 함께 빗자루를 들고 땀을 흘리며 내려앉은 문짝을 수리하고 쓰레기를 치웠다.

 청년들은 "우리 집보다 깨끗하다"며 좋아했다. 한결 아늑해진 성당과 교리실 문을 열 때마다 곳곳에 우리들의 땀과 노력이 묻어 있는 듯 했다. 무너진 성당 뒷마당 담장도 힘을 모아 세웠다. 5년 동안 폐허 상태였던 성당이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았다.

 성당에 오지 않던 어른 신자들은 여전히 주일미사에는 참례하지 않으면서도 넓은 성당 마당에 감자를 심길 원했다. 감자를 심어놓고는 풀을 매고 물을 주러 열심히 성당에 오는 이들은 하느님이 아니라 감자 때문에 성당에 온다. 주일미사 참례를 강조하면 이들은 "하느님께 대신 잘 좀 말해 달라"며 미안하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감자 신자`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성당에서 감자를 캐 먹던 추억을 되살리고, 성당에서 나눠주던 간식과 따뜻한 코코아 맛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분명 그 안에 하느님께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모든 고통 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신비스런 방법으로 이들을 돕고 계신다. 가난한 이들은 복음 선교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가톨릭평화신문  20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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