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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누가 내 어머니며 형제들이냐"

대만- 정운진 신부(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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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산골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주민들은 내 부모요, 형제자매들이다.
왼쪽 두 번째가 필자.
 
 
  5~6년 전 한국으로 휴가를 갔을 때가 생각난다.

 한국에 가면 서울에 있는 선교회 본부보다는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집에 머물기를 더 좋아했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홀로 계시기 때문에 휴가 때만이라도 함께 있어 드려야 할 것 같아서다.

 그때도 짐을 싸 고향으로 향했는데, 전과 좀 다른 게 있다면 홀어머니집에 조카와 손녀가 와 있는 거였다. 조카와 손녀가 안방을 차지하고, 어머니는 사랑방에서 지내셨다. 당연히 나는 방이 없어 어머니와 함께 사랑방에서 짧은 휴가를 보내야 했다.

 어느 날 시내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와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기 위해 부엌문을 열었을 때 기절하는 줄 알았다. 개 한 마리가 숨어 있다가 "멍!"하며 물려고 내 앞에 다가섰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 후에도 외출했다 돌아오면 영락없이 그 강아지가 사납게 짖으며 달려 들었다. 그래서 조카와 손녀에게 "내가 있는 동안 강아지를 매놓을 수 없겠냐?"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방으로 들어가면 즉시 강아지를 풀어주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안방으로 건너갈라치면 영락없이 강아지가 또 달려 들었다.

 조카와 손녀는 나보다 강아지가 더 좋은 것 같았다. 강아지는 조카와 손녀가 밖에 나갔다 돌아올 때면 멀리서 차소리만 듣고도 두발을 들고 반갑다고 난리를 친다. 그러니 강아지를 좋아할 수밖에….
 
 문득 어머니 품속 같던 고향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고향을 찾아 어머니를 뵙고 잠시나마 함께 지내려고 했는데 그 망할놈의 강아지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 만에 고향을 찾아온 내가 강아지보다 더 관심을 받지 못해서일까? 어쨌든 거처를 본부로 옮기기로 하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리셨다. 눈물을 내비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머니는 "나도 안방에서 키우는 저 개가 무서워서 놀랄 때가 많았다. 그러니 좀 참고 함께 지내면 안 되겠니?"하며 나를 붙들었다. 그래도 난 마음이 너무 불편해 어머니 말씀을 뿌리치고 서울로 올라갔다.


 
▲ 대만 원주민들의 전통춤 공연.
 
 
 본부에 도착했더니 총장 신부님이 나오셨다. "본부에서 지내려고 왔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총장님은 "자네가 웬일로 본부에서 휴가를 지내겠다고 하는 거야?"하며 의아해하셨다.

 그리고 한 달이 흘러 우리 선교회 사제서품식이 있었다. 새 신부들의 첫미사가 있기 하루 전, 여러 신부님들이 모여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집을 떠나게 된 사연을 농담삼아 꺼냈더니 여기저기서 "강아지보다도 못한 신부"라며 웃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신부들은 내 아픔(?)에 공감했을 것이다. 외국 선교지에서 살다가 어쩌다 고향이라고 찾아가보면 가족들과 서먹서먹하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유행어를 몰라 한국어까지도 낯설어지는 `영원한 이방인` 심정 말이다. 한국외방선교회 식구들은 말은 하지 않지만 누구나 동병상련의 마음이다.

 선교지인 대만으로 돌아와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서 훈화시간에 그 이야기를 꺼내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한 구절을 봉독했다.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태 12,48-50).

 그 후로 소중한 것을 깨달았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진정 내 고향이고, 교우들이 내 부모요 내 형제자매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도 교우들을 볼 때마다 어떤 이는 부모로, 또 어떤 이는 형제자매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비록 신자 수는 적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불러주셨으니 당연히 그들이 내 부모요, 형제자매 아니겠는가.
 


 
▲ 성당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의 길` 13처.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는 제자와 성모 마리아의 원주민 전통 복장이 눈길을 끈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512601-01-10200 예금주: 천주교 한국외방선교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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