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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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에콰도르<중> 초보 선교사를 울린 10살 소녀 선희 이네셈과 개미시

김순덕 수녀(사랑의 씨튼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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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장애인학교 이네셈(INESEM)에서 일하는 것이 알려지자 주변 한인교포들이 종종 찾아온다. 인근 도시 과야낄에 사는 선희(10)도 엄마를 따라왔던
방문객 중 한 명이다.

 이네셈은 국가 운영비 보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교사들 봉급을 매달 모금해서 겨우 주다보니 교사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교재 교구도 열악하다. 이런 상황이 어린 선희 눈에도 보였던 모양이다.


 
▲ 이네셈 학교 마당에서 개미시장이 열린 날.
하느님은 이날 선희를 통해 장애 학생들의 2주치 점심식사를 챙겨 주셨다.
 
 #저금통 들고 거리로 나간 10살 소녀

 선희는 그날 밤, 오빠와 함께 작은 깡통에 이네셈 학생들 사진을 붙여서 저금통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빠와 함께 용돈과 심부름값을 저금통에 모으기 시작했다.

 다음날,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선희는 주방에서 하루 종일 쿠키를 만들었다. 그 많은 쿠키를 누구에게 선물할거냐고 엄마가 묻자 선희는 비밀이라고 했다. 그리고 쿠키를 바구니에 담고, 이네셈 학생들 사진을 붙인 깡통을 들고 밖에 나가 행인들과 이웃집을 찾아다니며 혼자 쿠키를 팔았다. 베드로 까르보에 있는 장애인 친구들을 도와 달라며…. 너무나 진지하게 팔고 있어서 어머니도 말리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깡통에는 자그마치 86달러 36센트가 들어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선희는 이네셈 교사들이 교재를 구할 수도 없고, 복사기도 없어서 일일이 손으로 그림을 그려 수업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던 모양이다. 과야낄 시내 온 서점을 돌아다녔지만 학습자료(색칠하기와 언어학습 자료)를 찾지 못했단다. 그래서 선희는 인터넷을 뒤져 필요한 학습자료들을 모아 파일 한 권을 만들어 보냈다.

 선희가 다니는 학교 교감 선생님께서 선희 어머니께 전화를 하셨다. 얼마 전 선희가 찾아와 이네셈 학생들을 위한 개미시장을 열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한 달 동안 헌옷과 쓰지 않는 물건을 모으고 싶으니 이를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단다. 선희 어머니는 선희를 말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교감 선생님께서는 협조해 주는 게 좋겠다고 하셨단다.

 이네셈을 찾아온 선희 어머니는 이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시며, 선희가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와서 개미시장을 열어도 괜찮겠느냐고 물어 오셨다. 10살 선희는 초보 선교사인 나를 감동으로 눈물 쏟게 했다.

 선희가 짬짬이 모은 용돈과 쿠키를 만들어 팔아 보내준 저금통, 그리고 청년 방문객들이 모아 준 후원금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다가 호사(!)라고 여겼던 선풍기를 사기로 했다. 적도의 태양 아래 교실에는 아직까지 선풍기도 한 대 없다. 선희와 청년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우리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시원한 바람으로 나눠질 것이다.


 
▲ 이네셈 건물.
이네셈(INESEM)은 자비의 성모 특수학교라는 뜻의 머릿글자다.
 
 #하느님 사랑, 오지마을 구석구석까지

 오늘은 학교 마당에서 은인들이 보내준 헌옷을 모아 개미시장을 열었다. 며칠 전, 헌옷들을 분류하다가 색이 바래고 구멍이 난 옷들이 많아 한참 고민했다. 냄새나고 낡은 옷들을 다 골라내면 개미시장을 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오전에 동네 가난한 사람들이 그 옷들을 모두 사갔다. 오늘 개미시장 수익금은 75달러. 앞으로 2주 동안 우리 학생들(70여 명) 점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기쁘고 감사하다.

 이네셈은 한국 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학교다. 하지만 이마저도 돈이 없어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장애 학생들 가운데 한 달 수업료 12달러와 점심값 25센트가 없어 중간에 학교를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먼 곳에 사는 학생들은 한 달 차비 2달러가 없어서 학교에 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우리는 지난해 4월부터 이곳 베드로 까르보에서 100리, 200리 떨어진 다울레지구 오지를 찾아다니며 장애어린이들과 성인 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가정간호와 재활치료를 겸한 방문학교 프로그램이다. 승합차로, 때로는 카누를 타고, 혹은 적도의 햇살 속을 걷고 걸어서 외딴 마을에 사는 아이들을 찾아간다.

 근무력증을 앓는 미구엘과 카테리나 남매, 중증중복장애를 가진 프란치스코, 산골마을에서 2시간 동안 말을 타고 온 소아마비 청년부터 90살이 넘으신 할아버지까지 우리가 만나는 이들은 모두 남루하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다.

 속수무책의 가난과 열악한 환경에서 내가 하는 일은 미약하다. 하지만 참으로 감사하다. 하느님께서 선희와 같은 은인들이 나눠주는 관심과 사랑을 통해 오지마을 구석구석까지 비추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다른 이들에 대한 책임에서 드러납니다…그분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그분의 `다른 이를 위한 활동`에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중에서)

 후원계좌:  신한은행 140-008-847729  예금주:씨튼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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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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