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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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에콰도르<하>마드레시따, 꾸라메!(수녀님, 치료 좀 해주세요)

김순덕 수녀(사랑의 씨튼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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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시골 베드로 까르보에 있는 공소에 가면 10대 소녀 대여섯 명이 배가 부른 채 뒤쪽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눈이라도 마주치면 수줍게 웃는다. 많은 경우 형제 혹은 사촌의 아기를 임신한 소녀들이다.

 10대 미혼모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10대지만 이곳 현실은 사뭇 다르다. 10대에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고 살아온 엄마처럼 할머니도 그렇게 사셨고, 할머니의 할머니도 그렇게 살아온 삶을 현재의 10대들도 이어가고 있다. 사회적 통념상 아기 아빠는 떠나면 그뿐이라고 여겨 아이 양육은 대부분 엄마가 책임진다.


 
▲ 시각장애인 부부가 오랫동안 문 앞에 서서 우리를 배웅한다.
가정간호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늘 마음이 무겁다.
 
 #수줍게 웃는 10대 미혼모
 근친 간 임신이 많은 상황이고 보니, 장애아와 에이즈 환자가 많다. 인구 3만 명 중 장애인이 1000여 명이다. 그리고 인구의 10~20 정도가 에이즈 환자이다.

 이곳 진료소(Clinica Maternidad)는 17년 전 어린 산모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오스트리아 비엔나교구 소속 사제가 조산원으로 시작했다. 병원이라 하기에는 시설이 매우 열악하다. 의사는 1시간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도시에서 주 1~2회 정도 시간제 진료를 하려 방문한다. 정식 간호사도 없고, 수술 중에 정전되기 일쑤여서 자가 발전에 의존해 위태로운 진료를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오지마을 장애인들과 거동이 불편한 가난한 환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가정간호와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방문자들이 눈에 밟혀 마음이 무겁다.

 어제는 베드로 까르보에서 차로 2시간 걸리는 사막같은 발제 데 라 비르헨 마을에 다녀왔다. 오누이가 모두 시각장애인인 가정, 위암 말기인 어머니와 그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누워만 지내는 중증중복장애 딸, 길가에 앉아 "마드레시따, 꾸라메!"(수녀님, 치료 좀 해주세요!)하고 소리치던 걷지 못하는 할머니, 썩은 밤부집(대나무를 엮어 만든 전통가옥) 이층 창가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베로니카 할머니…. 가난과 장애를 지닌 여러 이웃들을 만났다.

 부러진 발목뼈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준 베로니카 할머니는 돈이 없어 허벅다리만큼 부은 발을 방치하고 있다. 정글 같은 엘 바호의 마리아 할머니는 10년 전, 집 마당에서 코브라에 다리를 물렸다. 살갗에 박힌 코브라 이빨을 못으로 제거했지만 전신마비가 됐다. 병원에 가본 적이 없는 할머니를 찾아온 외부인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한다.

 청각장애를 가진 루이스네 집은 돼지, 개, 닭, 염소들이 드나드는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홉 식구의 가장인 어린 누나가 남의 집 빨래를 해주고 벌어오는 5달러가 이 가족의 일주일치 생활비다.

 가는 곳마다 이렇게 가난과 장애가 한 묶음인 현실을 만난다. 하느님의 섭리가 이곳에서 우리를 어떻게 이끄실지 아직은 잘 모른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 발걸음을 미지의 세상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매일 뜨겁게 느낀다.


 
▲ 오지마을 가정방문 중에 만난 아이들.
가난하지만 참으로 눈이 맑은 이들 안에서 하느님 현존을 체험한다.
 
 #가난한 주민들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오후에 공소를 방문했다. 공소 마당에 아이들 30여 명과 어른들이 모였다. 그들은 산속 여기저기에서 말을 타고 왔다. 학교에 다닌 적 없는 아이들은 오두막에 모여 수업을 하고 어른들은 진료를 받는다. 수업이 끝난 아이들은 축구공을 가지고 마당을 누빈다.

 그러다 아이들이 나에게 슬쩍 공을 건넨다. 함께 놀자는 신호다. 함께 공놀이를 하다 숨이 차서 `쥐와 고양이` 놀이를 제안했다. 아이들이 이해를 못한다. 손짓, 발짓을 더해 놀이를 설명했다. 고양이(갓토)가 쥐(라톤)들을 잡는 것이라고. 먼저 잡힌 쥐가 술래가 되는 것이라고. 그러자 아이들이 실제 고양이를 가리킨다. 우리는 고양이가 아니라고 했다. 여태껏 이런 놀이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모든 것은 적응하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곧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했다. 방문을 마치고 공소 밖 개울을 건너는데 아이들이 모두 나와 소리를 지른다.

 "라톤" "라톤" "갓토" "갓토"…

 이곳은 깊은 오지라서 사촌들과 서로 결혼한단다. 그래서 모두 친척이다. 가난하지만 참으로 눈이 맑은 이들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그저 이들과 `함께 있음`이 선교사의 삶임을 절감한다. 이들과 나누는 사랑의 유대를 통해 우리는 이들과 하나가 된다.
 
 "나의 진정한 집으로 가는 것, 주님의 뜻에 따라 거기에 불림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행복의 길인지요!"(성녀 엘리사벳 앤 씨튼)

후원계좌
신한은행 140-008-847729 예금주:씨튼선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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