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선교지에서 온 편지] 필리핀 보나따스 "살 라맛 사 디오스" (하느님 감사합니다)

김미선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죠안나 가족과 함께.
죠안나 아버지는 생계가 막막할 텐데도 아이를 안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우리 동네 나보따스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 중심가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빈민지역입니다. 전에 쓰레기 매립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매립지가 다른 곳으로 이전됐는데도 여전히 퀴퀴한 냄새가 동네에 배어 있습니다.

 그래도 주민들 표정은 밝고 행복합니다. 비가 오면 온 몸에 비누칠을 한 채 거리로 뛰어나와 목욕하는 아이들, 햇빛 쨍쨍한 날은 한 양동이 물을 사다 빨래를 해서 널어놓고 행복해 하는 주민들, 먹을 것이 생기면 비닐봉지마다 조금씩 담아서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사람들, 무료급식소에서 밥과 반찬을 주면 자신은 맨 밥만 먹고 집에 있는 동생을 위해 슬그머니 생선 한 쪽을 옷 속에 챙겨 넣는 아이들, 그들이 제 이웃입니다.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유리창이 없는 성당으로 들이치는 비를 피해 미사를 봉헌하면서도 "살 라맛 사 디오스"(타갈로그어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우렁차게 외치며 박수를 칩니다. 기뻐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그들은 어쩌면 이미 복음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단지, 그들 삶의 자리에 함께 머물며 그들의 아픔과 슬픔, 기쁨과 희망을 나누라고 초대받았을 뿐입니다.  

  #엑스레이 촬영을 거부한 암환자

 나보따스에서 맞이한 첫날, 섭씨 35도를 웃도는 찜통더위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한 밤중부터 목청을 돋우는 닭울음소리였습니다. 얼마나 괴롭던지 `아침에 일어나면 저 닭부터 잡아서 삼계탕을…`하고 별렀는데, 언제부턴가 그 닭소리가 저를 괴롭히는 소음이 아니라 "살 라맛 뽀"(감사합니다)를 외치는 소리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살 라맛 뽀오오오오…. 살 라맛 뽀오오오오…." 하느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감사하고 찬미하는 삶이 진정한 복음의 삶임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김 루치아 수녀님과 취학 전 어린이 100명에게 교육과 식사를 제공하는 어린이집,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100명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먹이는 무료급식소, 그리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무료진료소를 운영합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차비가 없거나 몸이 너무 아파서 진료소까지 올 수도 없는 더 열악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트라이씨클(서민 대중교통 수단)에 의약품을 싣고 이동진료를 나갑니다.

 지난 2월 20일, 제가 나보따스에 도착한 그날은 저의 작은 친구 죠안나가 태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죠안나의 어머니는 유방암 환자였습니다. 올해 초 한국 의료팀이 의료봉사를 왔을 때, 유방암 환자이면서 아이를 임신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의료팀은 열악한 환경에서 투병하는 환자와 뱃속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귀국 후 그 자매님을 초청했습니다. 하지만 뱃속 아기를 염려해서 엑스레이 촬영까지 거부했던 자매님은 치료를 받으러 한국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7개월 만에 아이를 낳고, 8일 뒤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낡은 천막 빈소를 방문했을 때, 편안한 미소를 띤 채 잠들어 있는 자매님이 제게 `우리 아기를 잘 부탁해요`하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저와 죠안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 마닐라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정기적으로 무료급식소에 찾아와 봉사를 해준다.
 
 

 #걱정은 주님께 맡겨드리고

 죠안나가 사는 동네는 어시장 근처에 오밀조밀 들어선 판잣집으로 이뤄진 마을입니다. 저희들은 정기적으로 이 마을에 이동진료를 나가는데, 갈 때마다 분유와 기저귀를 챙겨 갑니다. 얼마 전에는 만삭의 몸으로 어린 동생을 돌봐 주던 16살 언니가 제왕절개술로 아이를 낳아 죠안나의 아빠가 아이를 돌보고 있습니다.

   죠안나 아빠는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밤 근무를 하면서 월급을 1800페소(약 5만 원) 받고 있었는데, 그 일마저도 죠안나와 4살, 6살, 12살 된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그만 뒀습니다. 생계 걱정이 클 텐데도 어린 자녀들을 품에 안은 순간만큼은 얼마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던지…. 그 모습을 보며, 저 또한 걱정을 주님께 잠시 맡겨 드리고 그들의 해맑은 미소 안에 함께 머물렀습니다.

 이곳에 온지 7개월, 이웃들의 삶은 참으로 고달프고 서글퍼 보입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면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센터를 열고 싶다"는 우리 장학생 아이의 꿈처럼, 어쩌면 그들은 제가 보지 못하는 희망을 주님 안에서 품고 살아가기에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늘 걱정이 앞서는 저를 매일 매일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삶을 살도록 초대합니다. "살 라맛 사 디오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8).


 후원계좌 국민은행  801701-04-102135
              예금주: 김봉자(필리핀 선교 책임 수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1-10-2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

로마 13장 8절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