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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필리핀 나보따스(下) - 나보따스를 흐르는 강

서로 돕는다면 아름다운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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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커먼 강물이 흐르는 나보따스 고가도로 아래에 사는 도시 빈민들.
오른쪽 강물은 쓰레기 천지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듯이"(창세 2, 10) 우리 성당 길 건너에 있는 강 하나가 시내 한복판을 지나 가까이에 있는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강을 블랙 리버(Black River)라고 부릅니다. 강물이 오물과 쓰레기로 오염돼 있기 때문이죠. 나보따스는 마닐라에서 차로 30분 걸리는 빈민지역입니다.

 이 강을 처음 보았을 때는 정말 질식하는 줄 알았습니다. 쓰레기가 가득하고 물 색깔은 연탄을 풀어놓은 듯 새카만데, 무엇보다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지구의 아픔이 느껴지며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상이변들이 당연한 현상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구에게 진심으로 미안했습니다.
 
 

 
▲ 빈민촌 아이들은 늘 배가 고프다.
우리가 주는 점심 한 그릇이 하루 식사량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지구야! 정말 미안해"

 주민들 생활이 어떠하기에 이토록 오염됐을까? 집안에 들어가봤더니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강둑에 의지해 지어진 수상가옥이라 부르는 판자집들은 화장실이 없고, 있다 해도 정화조가 없어 모든 생활오수가 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또 온갖 쓰레기를 강에 내다버리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태풍이 지나가면 길가의 쓰레기들까지 휩쓸려 내려가 블랙 리버는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오염된 강을 정화할 수 있을까. 강의 아픔에 공감하며 지나다닐 때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정화가 될까.

 5년 전 나보따스에 도착했습니다. 가난하다 못해 비참하게 살아가는 빈민들은 많은 것을 필요로 했지만, 우리는 어린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 밥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6~10살 어린이 200명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 한 끼가 하루 식사량의 전부인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우리 본당은 유아세례를 받는 아기들이 연 2000명이 넘으니 어린이들 천국이지요.

 이곳으로 봉사활동을 오는 사람들은 오염된 강을 보고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하루는 봉사활동차 방문한 한국 학생들과 "어떻게 하면 강을 정화할 수 있을까?"하는 주제를 갖고 토론을 했습니다. 초등학생들이 많아 토론이 잘 될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고등학생 형들보다 진지했습니다.

 "강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도록 교육하고, 곳곳에 쓰레기통을 놓아두면 좋겠다."
 "그럼 모아놓은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이곳 쓰레기를 모두 우주선에 실어 지구 밖에다 내다버리자."
 "가난해서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데, 우주선을 살 돈이 어디 있냐."
 "주일미사에 헌금대신 쓰레기를 주워오도록 하자."
 "그럼 성당은 어떻게 운영하느냐."

 난상토론을 벌였지만 해결책은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구가 병들어 가는 현실을 직접 보고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또 자기 용돈을 아껴 남을 돕는 것을 배웠습니다. 한국의 한 학원 원장님은 나보따스 봉사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강생들을 보냈습니다. 세상 한 모퉁이에서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줌으로써 자신들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하려는 취지입니다.

 수강생들은 나보따스 현실을 보고나면 자기들이 얼마나 행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깨닫습니다. 즉석에서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전화를 하거나 용돈을 아껴쓰는 대견한 모습도 보입니다.

 #한 알의 씨앗이 백배 열매를 맺기를

 하루는 한국에서 온 조카를 데리고 동네를 돌아봤습니다. 시커먼 강물을 보고 놀란 조카가 "왜 저렇게 새까매요? 저 물이 한 방울만 닿아도 내 살이 썩을 것 같아요" 하더군요. 그런데도 우리 마을 어린이들은 다리 난간에 올라가 다이빙을 하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또 한 번 놀란 조카가 "쟤들 죽으면 어떻게 해요"하며 걱정했습니다. "괜찮아, 우리 동네 아이들은 늘 저 강에서 수영하고 놀아서 죽지 않아."

 조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고(마태 26, 11),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나눔의 마음들이 모여 서로 돕는다면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저희들이 돕고 있는 어린이 200명과 장학생 35명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듭니다.

 우리 아이들은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훗날 한 알의 씨앗이 백배의 열매를 맺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보따스 어린이들과 함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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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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