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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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페루 깐가리공소(상)

서로 나누며 하느님께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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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방문한 수녀 손님들을 위해 직접 식사를 준비하는 가타리나 할머니.
 
  공소 축일에 있을 첫영성체와 유아세례, 혼인성사를 앞두고 오늘도 빠께공소에서 세 차례 교리를 했다. 밤 9시가 다 되어 교리가 끝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공소 옆에 사시는 가타리나 할머니 집을 찾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깐가리공소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고 위험해서 가타리나 할머니 집에서 잠을 자고 가기 위해서였다.


 #십자성호를 긋고 씨 뿌리는 사람들
 가타리나 할머니는 자식 하나 없이 달랑 혼자지만 씩씩하게 사신다. 할머니 집에 들어서니 부엌 바닥에 앉아 불을 때시다 일어나서 반갑게 맞아 주신다. 속이 출출하고 몸이 으스스해 할머니가 요리하는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쬐었다. 부엌 벽은 연기에 새까맣게 그을었고, 아궁이 옆엔 하얀 재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할머니는 어느새 국솥을 치우고 불 위에 새까만 프라이팬을 올려 삶아 놓은 닭고기를 막 튀기려 하셨다.

 "웬 고기에요? 오늘 무슨 특별한 날인가요?"하니 할머니가 웃으시며 케추아어(원주민어)로 "미꾸숭냐"하신다. "너와 함께 먹기 위해서"란 뜻이다. 사실 할머니는 아끼시던 닭 한 마리를 잡으셨다. 할머니네 밥상은 땅바닥이다. 삶은 옥수수와 따뜻한 죽, 먹기 좋게 튀겨진 닭고기가 땅바닥 밥상에 차려졌다. 성찬이 시작됐다. 할머니가 자식처럼 사랑하는 고양이 녀석과 온종일 할머니를 따라다닌 강아지 녀석도 우리의 밥상으로 다가왔다.

 우리 수도회가 페루에서 선교 활동을 한 지 올해로 17년째다. 한 팀은 리마의 변두리 비야 엘살바도르에서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또 다른 팀은 이곳 안데스 산속 깐가리 마을에서 소박한 사람들과 7년째 살고 있다.

 산이 병풍처럼 사방으로 둘러져 있는 해발 2200m 고지의 깐가리 마을엔 125가구가 옹기종기 산다. 바다처럼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밤이면 경이로운 별빛이 가득 쏟아지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그러나 이들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억척같이 일해도 가난한 삶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제대로 된 창문이 없는 집이 허다하고, 깨끗하고 따뜻한 온돌방이 아닌 땅바닥에서 담요 몇 장만을 깔고 잔다. 아직도 흙탕물을 가라앉힌 개울물이나 빗물로 식수를 해결하는 가정이 많다.

 처음 이곳에서 선교를 시작할 때, 이 낯선 가난함 앞에서 우린 몹시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시행착오도 많았다. 생소한 언어와 관습을 익히면서도 1년에 한 두 번 성탄 축제 때만 열심한 신자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동네 사람들과 한 식구가 되면서 낯선 이곳은 우리의 고향처럼 친근해졌다.

 우리 동네에 약주를 좋아하는 떼요 할아버지가 계신다. 성당에서 할아버지를 뵌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길에서 우리를 만나면 늘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하신다. 그러던 어느 날 떼요 할아버지를 수녀원 안의 작은 밭뙈기에서 일하시게 했다. 땅을 일궈 놓으신 할아버지는 씨를 뿌리기 전에 모자를 벗으시더니 씨를 손안에 쥔 채 정중히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신다. 진지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사람들이 성당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님을 알았다.


 
▲ 페루 빠께공소 앞에서.
 
 
 #인심 후한 `뺑덕` 할머니
 떼요 할아버지 말고도 동네에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까르멘 할머니도 계신다. 억척같이 일하는 또순이 할머니다. 할머니 밭에 양이나 염소가 들어가면 동네가 떠나가라 호령하신다. 우린 이 할머니를 `뺑덕` 할머니라 부른다. 지난해 마을 축제에서 마요로도모(축제 기부자)가 되신 할머니가 우리의 편견을 부끄럽게 했다. 할머니는 온 동네 사람들을 위해 오랜 시간 송아지를 황소로, 병아리들을 큰 닭들로 키우면서 잔치를 준비했고 풍성히 베풀었다. 사람들과 손을 잡고 신나게 춤도 추셨다.

 선교는 `일방통행`이 아니라고 했다. 하느님께 가는 길에서 각자 가진 소중한 것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배우며 살아간다. 적어도 그것이 선교의 삶이라 생각한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 부족한 가운데서도 나눌 줄 아는 사람들, 성당은 나오지 않지만 가슴 속 깊이 하느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 억척같이 일하지만 신나게 놀 줄도 아는 사람들….

 때론 황당한 순간들도 있지만 "가장 보잘것 없는 형제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마태 25.40) 그들 안에서 뵙기도 하면서 난 오늘도 행복한 선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쩜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소유한 진정 부유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후원계좌 국민은행 036-24-0388-498
예금주 : 이완자(페루 선교 책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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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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