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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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선교사

카자흐스탄 딸띠꾸르간본당(상) - 연기순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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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과 나무가 무성했던 수녀원 텃밭을 일구며.(오른쪽이 필자)
 
 
넓은 땅에 농사짓고 싶어 떠나온 김훈씨
겨울 긴 기후, 토양, 물 부족 열악한 여건
고려인들에게 한국 농업기술 가르치고파

    2010년 5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땅, 카자흐스탄에 우리 수도회의 첫 선교사로 파견됐습니다.

 우리와 동행한 부총원장 수녀님은 비자발급에 문제가 있어 끝내 알마티공항에서 출입국사무소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국으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처럼 든든한 작은형제회의 김창남(디에고) 수사님과 김훈(안드레아) 형제님이 마중나와 계셔서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선교지 딸띠구르간을 무리없이 찾아갔습니다.

 카자흐스탄 말은 한마디도 모르고, 러시아어라고 해봐야 겨우 한달 배우고 떠나온 터라 웃음 외에는 구사할 줄 아는 언어가 없는 우리를 본당 신부님(슬로바키아인)과 신자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그동안 수녀원을 수리하고, 장작을 패고, 적막한 겨울을 나고, 비자연장 관계로 이민국을 들락거리면서 갈등과 적응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중앙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나라(남한 면적의 26배)입니다.

 딸띠꾸르간에서 차로 40여 분을 달리면 1937년에 강제 이주돼 차디찬 맨 땅에 버려진 고려인들이 한과 울분을 안고 정착한 우스토베에 닿습니다. 소련 붕괴 후 어느 민족에도 속하지 못했던 그들의 아픔은 하느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딸띠꾸르간에는 우리에게 수호천사가 돼 주는 가족이 있습니다. 우리보다 3년 먼저 온 유일한 한국인 가톨릭 신자 가족, 김 안드레아씨네 입니다. 안드레아씨는 물론 부인 카타리나씨와 두 딸은 하느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보내신 선교사 같습니다.

 안드레아씨는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짓고자 하는 열망을 안고 이곳에 왔지만, 그동안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매순간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또 항상 감사했기에 불안과 두려움을 벗어 던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 안드레아씨 말을 통해 선교지 딸띠꾸르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누구나 돼야 하는 선교사의 한 모델로서 안드레아씨를 소개합니다.

 -딸띠꾸르간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넓은 땅에서 제대로 농사를 짓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던 차에 카자흐스탄에서 1년생 초화(草花) 재배 기술자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초청 조건이 괜찮아 4년 전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한 후 줄곧 화훼농사와 판매를 해왔거든요. 그러나 겨울이 긴 기후와 토양, 무엇보다 열악한 시설과 물 부족 때문에 화훼농사가 쉽지 않았습니다.

 꿈을 접으려고 했을 때 아내 카타리나와 가족이 힘이 돼주었습니다. 아내와 딸들도 짐을 싸서 3년 전에 제 곁으로 왔습니다. 저에게 가족은 큰 희망입니다. 처음 우스토베 지역에 5ha(5만 ㎡)의 땅을 임대해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네덜란드 씨앗이 90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우리 씨앗으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고집이었죠. 하지만 결과는 좋았습니다. 특히 고려인들이나 알마티(옛 수도) 한인들 주문이 늘어 올해는 매주 농작물을 싣고 장거리 영업(?)을 뛰고 있습니다.


 
▲ 수녀원의 김장담그기. 김훈(안드레아, 앞 왼쪽)씨가 입맛을 들여놔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은 한국인보다 김치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낯선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게 무척 힘들 텐데.

 농사짓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농작물 도난사고가 빈번합니다. 드넓은 땅 끝 어디에서 도둑을 본다 해도 달려가는 사이에 농작물을 챙겨 여유 있게 사라져 버리는….(웃음)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도 애로사항이구요. 5ha의 땅에 물을 대기 위해 손으로 수로를 만들었어요. 한국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 넓은 땅을 경작하려면 현지인들 손을 빌려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들과 함께 일하지 않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안드레아씨 손은 말 그대로 농부의 손이었다) 또 일을 하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손털고 가버리기가 일쑤입니다.

 -한국 농촌은 점점 피폐해지는데, 이곳 상황은?

 소련 붕괴 후 가장 큰 피해를 본 산업이 농업입니다. 과거에는 집단농장(국영농장)으로 운영되었기에 농사에 필요한 것들을 조합이나 국가에서 대줬어요. 하지만 1991년 독립 후 사유화가 진행되자 농민들은 하다못해 농업용수까지 돈을 내고 써야 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로 떠났지요. 이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일이 많은 것 같아요. 개인이 하기에는 벅차지만, 우선 우스토베에 사는 고려인들에게라도 농업기술을 가르쳐 농사를 지어도 도시인들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도시인들이 필요로 하는 작물을 한국 농업기술로 재배해서 생산량을 늘린다면 농가소득이 획기적으로 증가할 겁니다. 농사를 통한 파생사업은 무궁무진하죠.

 고려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선교사`이고 싶습니다. 하느님이 저를 낯설고 먼 땅에 파견하신 이유를 벌써 느끼고 있으니까요.

선교지 후원계좌
하나은행 121-910203-60107 연기순(카자흐스탄 선교 책임 수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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