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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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10살 소녀 까리나의 낡은 샌들

칠레(하) 조성근 선교사(성골롬반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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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 마을 축제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소녀.
 
 
  "제노비오~"

 10살 꼬마소녀 까리나는 저 멀리서 저를 보자마자 얼굴이 빨개지도록 소리를 지르며 달려 옵니다. 까리나가 달려와 안기는 순간,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가 됩니다.

 저는 칠레 수도 산티아고 근교 빈민 밀집지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공소에서는 매년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 시골 외딴곳으로 선교를 떠납니다. 공소 신자들도 어렵게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지만, 일년 동안 준비해서 자신들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남동생 업고 길을 걷는 까리나

 그해에도 동네 주민 열 네 명이 그해 처음 칠레에 선교사로 파견되신 한국 신부님 두 분, 미국 신부님 그리고 저 이렇게 한 팀을 이뤄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12시간 걸리는 외딴 시골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우리는 조그만 학교를 야영지로 삼고 두 세 명이 한 조를 이뤄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시골에 있는 집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길도 험해서 하루에 한 두집 방문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날도 저와 광주대교구 황성호 신부님 그리고 원주민 부부(호세와 바울라)가 한 조를 이뤄 까리나의 집을 처음 방문하게 됐습니다. 한 시간 이상 걸어서 도착한 까리나네 집은 여느집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를 맞아준 할머니와 까리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까리나 엄마가 배가 아파서 얼굴이 잿빛이었는데 집에 전화도 없고 휴대전화도 연결되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와 동행한 호세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휴대전화가 연결되는 곳을 찾으러 할머니와 밖에 나갔고, 바울라는 까리나 엄마를 돌봤습니다. 까리나와 8살 여동생 레지나, 그리고 5살 정도되는 남동생 에스테반은 황 신부님과 제가 돌봐야 했습니다.

 황 신부님은 아이들을 위해 감자와 양파, 달걀로 요리를 준비하셨고 저는 종이접기를 하며 놀란 아이들을 달래 줬습니다. 까리나는 유난히 저를 좋아했고(탁월한 외모 때문?), 레지나는 황 신부님을 잘 따랐습니다(뛰어난 요리 실력 때문?).

 어렵사리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몇 시간이나 지나서 도착한 구급차에 어머니와 할머니를 태워 보낸 뒤 우리는 3남매를 친척집에 데려다 주려고 나섰습니다. 친척집은 걸어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곳에 있었습니다. 에스테반은 어린데다 낯선 사람을 싫어해서 그런지 항상 누나 곁에만 붙어 있으려고 했습니다. 조금 걸어가다 다리가 아프다고 누나에게 매달렸습니다. 누나는 그런 에스테반을 업고 걸었습니다. 성인인 우리도 걷기 힘든 길인데 까리나는 아무말 없이 동생을 업고 걸었습니다. 그것도 다 해진 여름 샌들을 신고 말입니다.

 우리는 2주 동안 선교 기간에 까리나 집을 몇 번 더 방문했습니다. 아이들은 눈이 옆으로 찢어진 동양인이 자기 나라말을 하는 걸 신기해하며 잘 따랐습니다. 산티아고로 돌아와서 낡은 샌들이 눈에 밟혀 저와 황 신부님은 까리나와 그 동생들에게 신발을 선물했습니다.

 하루는 주일미사를 참례하고 오는데 호세와 바울라 부부가 불러 세웠습니다. 까리나가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의 상습적 폭행을 피해 정부가 운영하는 쉼터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줬습니다. 지금은 외부와 단절된 상태라서 누구와도 연락할 수 없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까리나의 어른스러운 모습이 어쩌면 이렇게 큰 마음의 상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난히 저를 좋아했던 까리나를 좀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두어달 지나 어렵사리 까리나 엄마와 연락이 닿아 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까리나는 변함없이 동생들을 돌보고 있었고, 오랜만에 찾아간 저를 제가 감당할 수 없는 환한 미소와 사랑으로 맞아 주었습니다.


 
▲ 여름 휴가철에 찾아간 시골 선교지에서 마을 주민들과.
사진 왼쪽 필자, 가운데 송우진(대전) 신부, 오른쪽 황성호(광주) 신부.
 
 
#어떤 연인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편지

 제가 까리나에게 해준 건 종이학 몇 마리와 신발 한 켤레 뿐입니다. 하지만 까리나는 저에게 플라스틱병으로 만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과 형형색색의 하트를 선물해줬습니다. 또 `제노비오 사랑해`란 글씨를 쓴 어떤 연인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스런 편지 한 통도 주었습니다. 그리고 문득문득 까리나를 생각할 때면 눈물이 날것처럼 그리워지는 칠레 시골 마을의 소박하지만 한 없이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가슴 속에 새겨 주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없는 독신이어서 부모의 자식 사랑이 어떤 건지 모릅니다. 하지만 까리나와 그 동생들을 생각할 때면 눈에 그 얼굴들이 밟혀 걱정스럽고 마음이 아픕니다.

 선교를 떠나기 전에 제 양성자에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 할 수 있을까요, 기도하는 방법좀 가르쳐 주세요"하고 묻자 선배 선교사는 "선교나가면 기도 열심히 하게 될거예요"하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 대답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선교사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받은 건 너무나 많은데 해준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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