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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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가난한 병자, 그냥 두시겠습니까

코트디부아르-박달분 수녀(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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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릴리 궤양에 걸려 팔과 팔꿈치가 심각한 상태가 된 환자.
치료를 서두르지 않으면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누군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선교사 생활을 이야기해달라고 하면 이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로 6년 동안 이곳 부아케(수도 야무수크로 북동쪽 위치)에서 브릴리 궤양이라는 풍토병과 싸웠습니다.

 브릴리 궤양은 오염된 강에 사는 물벼룩이 피부에 침투해 피하조직을 파괴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초기에 별 증세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늦게 병원에 찾아오는 터라 항생제가 잘 듣지 않습니다. 광범위하게 퍼진 궤양 부위는 치료 후 피부이식을 해야 하는 데 표피가 없는 상태로 아물면 쉽게 피부암에 걸립니다.
 

 
▲ 환우들과 함께(뒤줄 맨왼쪽 필자.)
 
 
 #우리 진료소는 나무 그늘

 6년 전 마을에 들어가 환자들을 만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환자들은 나뭇잎과 풀끈으로 상처를 동여맨 채 나무 그늘에 힘없이 누워 있었습니다. 상처 부위에 새카맣게 날아다니는 파리떼를 보는 순간 동네에 있는 파리란 파리는 다 몰려든 것 같았습니다. 그때는 저 역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함께 있던 수녀님이 갖고 있는 돈으로 약품을 조금 샀습니다. 하지만 거즈와 붕대는 수입품이라 가격이 비싸 엄두를 낼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다행히 한 신부님이 유럽에서 기증받은 헌 시트를 몇 상자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라 거즈와 붕대를 만들고, 다림질로 소독을 해서 썼습니다. 진료소가 없다 보니 어느 마을이건 나무 그늘에 거적을 깔고, 나뭇가지에 링거병을 매달고 진료를 했습니다. 그리고 쌀, 옥수수, 콩을 볶아 만든 곡식가루를 영양실조가 심각한 아이들 순으로 나눠 줬습니다. 마을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면 오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곡식을 볶고 갈아야 했습니다.

 수녀 몇 명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우리가 진료하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는 마을 청년들에게 이 일을 해보겠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기꺼이 하겠다는 청년들이 있길래 그들이 상처를 치료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켰습니다. 우리가 방문하는 날이면 마을 봉사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나무 그늘을 깨끗이 청소하고 책상과 의자를 빌려와 간이 진료소를 차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이런 질병은 `마귀의 병`이라 믿고 병을 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지가 썩어갈 때가 돼서야 병원을 찾는데, 어떤 경우 너무 심해서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경우 병원에서 링거주사를 맞다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병원에 가면 죽는다"고 수군거립니다. 이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문치료센터가 있어야 할 것 같아 2009년부터 병원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한국 후원자들과 수녀회 본부, 그리고 룩셈부르크 정부 도움을 받아 지난 10월 마침내 치료센터를 열었습니다.

 얼마 전 브릴리 궤양은 아니지만 발에 상처가 심하게 난 사람이 입원했습니다. 가끔 심한 구토를 하고 피를 토하기도 해 의사에게 물으니 항생제 부작용일 수 있다며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는 돈이 없다며 엑스레이 촬영을 거부했습니다.(우리 병원은 사람들에게 공짜의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다만 얼마라도 치료비를 받습니다. 한두 번 치료비를 내다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다음날 이른 새벽 간호조무사가 그 환자 상태가 좋지 않다고 알려왔습니다. 즉시 병원으로 달려 갔지만 이미 숨진 상태였습니다. 환자 여동생은 오빠가 오래 전부터 탈장을 앓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환자는 이를 저주의 병이라고 생각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끙끙 앓다가 죽을 때가 돼서야 병원에 온 것입니다.

 #흙투성이 붕대 감고 오는 똘라

 바미엔이라는 부인은 이제 23살인데, 언뜻보면 40대 중년 아주머니입니다. 한쪽 다리 상처가 매우 심한 상태였습니다. 남편이 간호를 맡겠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두 달 지나자 남편은 어디론가 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똘라라는 소년은 다리에 난 상처 때문에 병원에 왔습니다. 소년 할아버지가 최소한의 치료비조차 내지 않아 결국 무료로 치료해주기로 했습니다. 대신 똘라가 병원 정원 잡초 뽑는 일을 가끔씩 도와주는 조건으로. 하지만 똘라는 조금 나은 것 같으면 오지 않고, 상처가 심해지면 들렀습니다. 올 때마다 붕대가 흙투성이였습니다. 그러더니 몇 달 만에 상처가 더 악화된 상태로 나타났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밭에 나가 일하지 않으면 할아버지가 밥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똘라가 아침에 오면 빵과 우유부터 먹이고, 목욕을 시킵니다. 한국에서 헌옷이 도착하면 맞는 옷을 골라 입히기도 합니다.

 우리 병원은 한국의 작은 개인의원 정도 시설이지만 이곳에서는 현대식 병원이라는 평을 받습니다. 이제 하루라도 빨리 수술실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장기 환자들에게 피부이식을 하면 치료기간을 단축하고, 환자들 고통도 덜어줄 수 있을 겁니다. 수술을 하려면 의사에게 최소한의 수술비를 줘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가 숙제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가난한 병자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병자를 바라보시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가난과 질병을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그 마음으로 몇 명의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우리는 계속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후원계좌 : 국민은행 607701-04-241612


가톨릭평화신문  201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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