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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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이번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을 만났어요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상)-마진우 신부(대구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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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있는 마르셀로, 마르셀로는 이번 성탄절에 길에서 만난 아기 예수님이다.
 
 
   성탄에 즈음해 아이들과 선교체험을 갔습니다. 시골 공소마다 아이들을 서너 명씩 풀어놓고 그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성탄에 대한 교리교육을 했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제대로 된 상수도 시설도 없는 시골이지만 아이들은 모두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나 아이들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외모는 점점 초라해져 갔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워졌습니다.


 
▲ 성당 마당에 모인 주일학교 어린이들.
가난과 부모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는 아이들이 많다.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성탄 바로 전날,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길가에서 한 아이를 스쳐지나 갔습니다. 언뜻 이상한 느낌이 들어 차를 세우고 후진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얘, 무슨 일이니?"
 "날 죽이려고 했어요.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일단 병원부터 가자. 빨리 뒤에 타라."

 그렇게 아이를 태우고 가까운 보건소를 향해 달렸습니다. 가는 동안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았습니다. 이름이 뭔지, 누가 그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지만 아이는 장애아였습니다. 말이 굉장히 어눌한 데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 말에 따르면, 이름은 마르셀로이고 빨간 대문 집에 살며 엄마가 자신에게 이런 해코지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점점 정신을 잃어갔습니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자꾸 옆으로 쓰러졌습니다. 난 좀 더 속도를 내 보건소에 도착했습니다.

 아이가 목이 마르다길래 차 안에 있던 탄산음료를 따서 입에 물려주고는 병원 안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혔습니다. 의사가 상처를 닦고 나서 보더니 상처가 깊어 폐도 손상됐을지 모른다고 걱정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여기 구급차 있어요?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야죠."
 돌아온 대답은 부정적이었습니다. 때마침 가까운 곳에 있는 경찰서에서 경찰관들이 도착해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이 뭔지, 전화번호를 아는지, 가족 이름이 뭔지, 집 주소가 어딘지…. 아이가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 가며 목마르다고 부르짖는데도 경찰관들은 조사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아이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기미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의사들은 수액을 하나 매달고는 나더러 그 수액 값을 계산하라고 했습니다. 경찰들도 딱히 차가 없어서 큰 병원으로 옮기기 힘들 것 같다면서 내 차로 직접 옮기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수액 값을 내고 아이를 차에 싣고 근처 큰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의사가 나와 또다시 난색을 표했습니다. 수술실에 방이 없어서 이 병원에서 아이를 다루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응급실 침대에 눕혀놓고 다른 큰 병원에서 보내주는 구급차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응급조치를 한 뒤 마르셀로를 두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 우리 본당의 `귀염둥이` 파비올라와 함께(왼쪽 필자).
 
 
 #여러분의 아기 예수님은?

 성탄이 지났습니다. 저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누구는 연인과 함께, 또 누구는 친구들과 함께 아기 예수님 생일을 축하했겠지요.

 하지만 정작 아기 예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저는 이번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을 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예수님 이름은 마르셀로였고 피를 흘리며 길가에 쓰러져 계셨습니다. 여러분의 아기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을까요? 여러분들 가족 중에 외로움을 느끼는 모습으로, 친구들 가운데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모습으로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선교`는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이 그분 부르심에 응답하는 모든 행위가 선교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선교사들입니다. 여러분 주위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한 해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축복 가득하십시오.


후원계좌 국민은행 612901-04-018957 예금주 마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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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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