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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공개대학⑧] 병인박해기 경상도 순교자(Ⅰ)

양 인 성(한국교회사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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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교구의 첫 영세자이자 첫 순교자가 김기량(펠릭스 베드로, 1816~1866)으로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교구에서는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자 1998년 9월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황사평 묘역에서 순교비제막식을 거행한다. 이어 1999년 1월에는 김기량 순교 약전을 정리, 한국 순교자 시복시성 통합 추진위원회에 제출한다. 이를 위해 교구에 시복시성위원회를 구성했으며, 2005년 4월에는 조천읍 함덕리에 순교 현양비 제막식을 거행한다. 한국 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또 서귀포시 서흥동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수도원 및 경당을 세우고 지난 5월 축복식을 거행하기에 이르렀다.

 김기량이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1857년 2월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중국 광뚱성 해역에서 영국 선박에 의해 구조돼 홍콩에 다다른 것이 계기가 됐다. 영국 배에서 그를 만난 프랑스 사제들은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데려가 조선 신학생 이 바울리노를 만나게 해준다. 이 바울리노에게 교리를 배우게 되자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그가 `제주의 사도`가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교육에 갖은 정성을 다 기울였다. 두 달 만에 루세이유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은 그는 홍콩을 출발해 의주를 통해 조선에 귀환했고, 이듬해 5월 조천포를 통해 제주로 돌아온다. 그 사이 조선 선교사들과 접촉, 배티교우촌으로 가서 페롱 신부와 최양업 신부를 만났다.

 제주로 돌아온 그는 집안 사람 20명을 개종시켰고, 자신이 데리고 있던 사공들을 예비신자로 만들었다. 1865년에는 그가 탄 배가 일본 규슈에 표착하자 나가사키에 체류하면서 프티장 신부를 만났고, 이듬해 초 조선으로 귀국한 뒤에는 사공 2명이 세례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무역차 경상도 통영에 갔다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발각돼 통영 포졸들에게 체포됐다. 혹독한 문초와 형별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증거, 1867년 1월 감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하느님의 종 125위 중 부산 수영(동래) 장대 순교자로는 이정식(요한, 1795~1868)과 양재현(마르티노, 1827~1868) 등 2위가 있다.

 경상도 동래 북문 밖에 살았던 이정식은 무과에 급제, 동래의 장교가 됐으나 59세 늦은 나이로 천주교에 입교해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가족과 미신자들에게 열심히 신앙을 권면했고,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애긍에 힘썼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기장과 경주로 피신했다가 다시 울산 수박골(현 울산시 북구 농소1동)로 피신했으나 그곳에서 아들 이월주(프란치스코), 조카 이삼근(베드로) 등과 함께 붙잡혀 동래로 압송돼 47일간 옥살이를 하다가 73세를 일기로 순교했다. 같은 날 그의 아들 이월주와 며느리 박조이(마리아), 조카 이삼근, 다른 교우 차장득(프란치스코), 양재현(마르티노), 서울 이 생원(야고보), 옥조이(바르바라) 등 7명도 같은 장소에서 치명했다.

 이정식과 함께 치명한 양재현은 동래에서 좌수 직책을 갖고 있던 인물로, 이정식을 통해 신앙을 알게 되고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1868년 동래 포졸에게 체포돼 수영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동래 관아에서 순교했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하느님의 종 125위 가운데 울산 장대 순교자로는 이양등(베드로, ?~1868)과 김종륜(루카, 1819~68), 허인백(야고보, 1822~68) 등 3위가 있다. 경상도 울산 죽령(현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교우촌 회장이던 이양등은 꿀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던 인물로, 1866년 박해를 피해 죽령 교우촌으로 이주해온 김종륜과 허인백을 만나 서로 신앙을 권면하며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1868년 포졸들이 죽령 교우촌을 찾아내면서 발각돼 교우들과 함께 잡혀가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이양등은 사형선고를 받고 1868년 9월 14일 울산 장대(현 울산시 중구 남외동)로 끌려가 참수를 당했다.

 충청도 공주 양반 집안 출신으로 상주 멍에목(현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을 거쳐 죽령 교우촌으로 이주했던 김종륜, 경상도 김해 농부 집안 출신으로 언양을 거쳐 죽령 교우촌으로 이주해 살기까지 `신덕자(信德者)`라고 불리며 수계의 삶을 살던 허인백도 이양등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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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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