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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86) ‘로치데일 공정 개척자 조합’

하느님 나라 향한 ‘하나된 공동체’/ 일자리와 임금 줄어 힘들었던 ‘배고픈 40년대’/ 1844년 노동자 28명 모여 ‘로치 … 조합’ 결성/ 매년 1파운드씩 걷어 조합원에게 식료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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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표정뿐 아니라 삶의 방식 등 모두가 제각각인 사람들 가운데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마음으로 하나된 ‘친교의 공동체’를 일궈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들 속에 깃들어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읽어낼 때 일치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시대의 징표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드러내시는 주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 앎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십자가이지만, 절박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일상에 한층 다가선 협동조합들의 모습들 속에서 인간사뿐 아니라, 온 세상을 주재하시는 최고경영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의 탄생을 되새겨보는 일도 인류 역사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축구의 본고장 영국 맨체스터가 ‘협동조합의 고향’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노동자들의 하나된 마음, 그리고 인류에 대한 사랑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맨체스터 인근 로치데일(Rochdale)은 중요한 면직물 공업도시였습니다. 그렇지만 ‘배고픈 40년대’라 불린 1840년대의 불황기에는 노동자 6명 가운데 5명이 겨울철에 덮을 모포가 없을 정도로 참혹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생산의 기계화로 일자리와 임금이 줄어드는 가운데 독과점 식료품 사업자들의 횡포는 날로 심해져가고 있었습니다. 모래를 섞은 설탕을 팔거나 저울을 조작해 쇠고기나 버터 양을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1844년, 이런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바꾸기 위해 로치데일의 직물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28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지닌 신앙인들을 비롯해 감리교의 금주운동가, 차티스트운동가, 사회주의자 등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은 ‘종교와 정치에 대한 중립’을 원칙으로 세워 각자의 신념을 꺾지 않으면서 서로를 존중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나가기 위해 마음을 모아 1년에 1파운드씩 출자금을 걷어 작은 가게를 열고 직접 버터, 설탕, 밀가루 등 식료품을 구입해 조합원에게 공급하기로 의기투합합니다.

협동조합의 효시가 된 ‘로치데일 공정 개척자 조합(Roch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의 출발은 이처럼 소박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함께 꾼 꿈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에서 보통선거권 쟁취투쟁(차티스트운동)이 일어나 실제로 성인 남녀의 보통 평등 선거권이 인정된 것은 1928년입니다. 그러나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노동자들은 이미 설립 초기부터 남녀 구분 없이 ‘1인 1표’의 평등한 세상을 구현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선택이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모습에 주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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