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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94) 사회성장의 동력 ‘협동조합’

국가경쟁력·국가투명성 세계 1위 ‘핀란드’/ 민간·공공영역 등 협동조합 비중 가장 큰 나라/ 은퇴 할머니들, 여생 함께 지낼 실버공동체 구상/ 매일 저녁식사 함께하고 청소·빨래도 같이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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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오자 없는 학교’를 표방하면서도 탁월한 학업성취도를 이끌어내 많은 나라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한 북유럽의 핀란드가 협동조합 강국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히던 핀란드가 오늘날 국가경쟁력 세계 1위, 국가 투명성 1위, 범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된 배경에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있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국민소득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나라로 꼽히는 핀란드는 민간분야에서뿐 아니라, 많은 공공영역에서도 협동조합이 활력을 주고 있으며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핀란드가 지닌 힘의 원천이 사랑과 나눔을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교 정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실버요양조합 ‘로푸키리’

“노인 요양시설에 가지 말고 노인 공동체를 만들자”

핀란드 수도 헬싱키 외곽의 한 아파트 단지. 이곳에는 다른 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아파트가 있습니다. 평균 나이 70세 안팎인 58가구 69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곳으로, 얼핏 보면 여느 노인요양원과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노인들이 직접 아파트 설계부터 디자인을 계획한 데다 공동의 생활 규칙까지 정해 생활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실버요양조합 ‘로푸키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말로 ‘마지막 전력질주’라는 뜻을 지닌 로푸키리의 시작은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헬싱키에 갓 은퇴한 할머니 10여 명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남은 인생 서로 의지해가며 외롭지 않게 살아보자며 실버 공동체를 구상했습니다. 마음을 모은 할머니들은 우선 시유지를 싼 값에 임대해 1층과 꼭대기 층에 공용공간을 마련하고 2층부터 6층까지 58가구를 배치한 공동생활주택을 세웠습니다. 시가보다 저렴한 입주금(56m² 2억5500만 원)에 노인끼리 모여 사는 공동체가 생긴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60~80대 노인들의 입주신청이 쇄도했습니다.

현재 로푸키리의 노인들은 식사와 청소, 빨래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을 같이 해결해나가고 있습니다. 입주자들은 매주 월~금요일 오후 5시 공동식당에 모여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데, 6개 조로 나눠 매주 돌아가며 식사를 준비합니다. 세탁실·관리실·사우나·체조실·회의실 청소도 이런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게다가 합창단이나 요가클럽 등 15개 동아리를 만들어 활기찬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활동하고 있는 문학클럽은 공동 문집을 내기도 했고, 연극클럽은 전문 극단의 도움을 받아 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입주자들은 소말리아 이주 여성을 불러 수영을 가르치고 대신 영어를 배우는 식의 재능 나눔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노인이라는 굴레를 만들어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협동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삶에 밴 나눔을 통해 그리스도적 가치를 나누고 있기에 다른 공동체들에게도 많은 신선하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핀란드 사회를 발전시키는 배경에는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그리스도교 정신이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무덤에서 요람까지 인간적 품위를 유지하며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은 하느님을 닮은 인류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본질적인 소망이자 염원입니다.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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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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