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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9) 자유와 경쟁보다 정의와 연대 우선해야

효율·이익 위해 당연시되는 경영의 자유는/ 불법 파견·부당해고 등 사회정의 무너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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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잘 모르는 일반인이나 어린 아이들까지도 신자유주의로 인한 세계화 시대의 위력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가 지난 1997년 터진 IMF사태일 것입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난생 처음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하게 된 국민들은 큰 충격 속에서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너도 나도 금모으기운동에 동참했고, 막대한 공적 자금을 쏟아부어 부실기업을 살리는 일이 자신의 일인 양 함께했습니다. 온갖 절제와 희생도 감내했습니다. 평범한 가정의 가정경제와 삶을 옥죄게 될 정리해고제나 파견법이 도입된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그때는 그러한 정책이 과연 올바른가를 따질 겨를도 없었습니다.‘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디면 좋은 시기가 반드시 올 수 있다는 간절한 기대와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밑거름으로 세계가 놀랄 정도로 우리 사회는 비교적 빠르게 위기를 극복했지만 10여년 전 사람들이 애틋한 마음으로 나눴던 우애와 믿음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 아래서는 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거나 정리해고를 하거나 비정규직을 쓰는 것은 경영상의 자유로 허용되고 시장의 경쟁 원리로 인정받습니다. 사회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인 기업과 시장이 자신의 생존 규칙에 따라 미래를 계획하고 개척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업과 시장만이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 요소들은 아닙니다. IMF사태 당시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일반 국민이 실제로 이 사회의 지배적 다수이며, 이들로 이뤄진 국가라는 공동체를 질서있게 유지하려면 경쟁과 자유를 넘어서는 본질적이고 영속적인 가치와 규칙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적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바로 정의와 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상위법인 헌법이나 하위법인 노동법도 사회적 정의와 연대의 정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기업이나 시장도 사회의 한 구성 요소로서 경쟁과 자유 이상으로 불변하는 사회적 윤리와 도덕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정의와 연대를 실천해야 합니다. 기업이 갖는 경영상의 자유는 무제한이 아니며, 그것이 사회적 정의 혹은 사회가 향유하는 기본 권리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정과 부패에 물든 기업의 실상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동안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진중공업 사태가 단적인 실례입니다. 한진중공업이 부산 영도에 있는 조선소를 그대로 두고 필리핀 수빅만 경제자유구역에 70만 평에 달하는 조선소를 건설해 사업을 확장하는 가운데, 지난 2010년 12월 15일, 경영 악화를 이유로 생산직 근로자 400명을 희망퇴직시키기로 한 결정에 노조가 반발하면서 불거진 이 사태는 정리해고의 정당성에서부터 사내 하청의 활용이나 고용불안정에 따른 비용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치지 않아 교회가 가르치는 사회 정의와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를 불법 파견 받는 것이 별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는 현실이나, 월 100만 원 받는 청소 도우미나 미화원의 임금을 줄이기 위해 80만 원의 파견근로자로 바꿔버리는 정책이 효율과 이익창출이라는 이름으로 치부되고 정당화되는 상황 등은 우리 사회가 인정과 도의, 기본인권을 외면하고 저버리는 비정한 사회 풍토를 조성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경영상의 자유가 전 지구적인 것만큼이나 사회적 정의 역시 전 지구적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정당성 없는 정리해고나 노동력의 가치를 떨어뜨려 착취 수준으로 이윤을 남기는 행위 등은 사회적 정의를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결국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유와 경쟁이라는 좁은 시야가 아니라, 정의와 연대라는 넓은 눈으로 나라와 세계 공동체를 보면 세계화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가치와 규칙이 절실함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실생활이 불편하고 경제적 불이익이 오더라도 이웃의 아픔과 어려움을 내 것과 우리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그리스도적 감수성이 더없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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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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