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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24) FTA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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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세상 속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지상의 나그네라는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고유한 존재태(存在態)로 인해 백성들과 함께 세상이 주는 십자가 앞에 서야만 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대로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가져오는 존재가 교회이고, 또 그 교회를 이루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주는 십자가입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경제문제는 더욱이 사람, 나아가 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됩니다. 참과 거짓이 분명하게 가려지는 문제라면 별 어려움이 없겠지만 경제를 둘러싼 문제들은 대개 다양한 계층에 속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판단을 유보하고 사태를 관망하기만 할 수도 없는데, 그로 인한 파장이 신자들의 삶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월 22일 숱한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난제를 던져주고 있는 사안입니다. FTA를 둘러싼 문제를 놓고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식량주권 훼손과 함께 농어촌, 농어민,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노동자와 서민의 난관이 예상됩니다. 한·미 FTA 이전에 비준된 다른 FTA(한·칠레, 한·싱가포로, 한·유럽)에서는 관세폐지 예외품목을 확보하였으나, 한·미 FTA에서는 발효와 동시에 38, 5년 이내엔 60의 농축산물이 무관세로 들어오게 됩니다. 농업피해 보전대책과 수출농업 육성이 담보되지 않은 한·미 FTA의 발효시기를 연기하거나 폐기하고, 피해대책을 우선 보장하라고 연일 대중시위가 격화되고 있습니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의 입장으로만 세상이 던져주는 문제를 볼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진리의 푯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순간순간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예수님을 자신의 삶 한가운데 모시고 그분의 뜻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적인 갈등과 어려움이 클수록 더욱 하느님께 매달려 그분의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FTA를 둘러싼 문제뿐 아니라 그 어떤 일도 이런 자세로 대할 때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고 또 그만큼 주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다가설 것입니다.

이제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도 익숙해져버린 FTA란 자유무역협정을 뜻하는 ‘Free Trade Agree ment’의 약자로 국가 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가능한 한 모든 무역 장벽을 제거하는 협정을 말합니다. 자유무역협정은 협정 당사국 간에 관세를 비롯한 무역장벽을 제거함으로써 보다 넓은 시장에서 자유무역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국제적 시장확대 조치라 할 수 있습니다. 새 천년기 들어 활발해지고 있는 FTA는 전 세계적으로 자유무역을 확대함으로써 세계 후생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전체의 완전한 무역자유화는 정치·사회·문화·경제적 요인 등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실현하기 어렵고 현실적으로 그것이 실현된 적도 없습니다. 아울러 FTA는 결과적으로 협정을 맺지 않은 비동맹국에 대해서는 무역상 차별조치를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계 전체의 입장에서는 차별에 의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남미 여러 나라는 미국과 맺은 FTA로 인하여 식량주권을 온전히 박탈당한 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농축산물 생산을 포기한 아이티에서 절대적 식량부족으로 버터를 넣은 진흙빵을 구워먹는 모습은 눈물겹습니다. 이렇게 균형을 잃은 종속적 체제로 가는 FTA는 제동을 걸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FTA는 필연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들 사이의 균형적이고 비례적인 법도를 따라 체결해야 하는 상대적인 선택 사안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경제활동이 한 인간과 가정, 사회와 인류에게 선익을 주는 일일뿐 아니라,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거룩한 행위임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활동 과정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선악(善惡)과 진위(眞僞)를 식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잣대를 갖지 못한다면 가정과 사회, 국가가 위기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파국을 맞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FTA를 둘러싼 문제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만, 사회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거시적 안목에서 교회가 가르치는 재화의 보편적 원리와 국가 사이의 통상 윤리에 대해 귀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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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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