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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25) 정치·경제 논리 편승한 FTA, 소외계층 양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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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제학은 자원의 제약이라는 조건 아래서 개인이나 사회의 선택 문제, 합리적 의사결정 문제를 주로 다루는 등 기술적, 기능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경제학은 경제활동에 담겨있는 ‘자연법칙’을 탐구하면서 과학적 접근방법을 취해 왔기 때문에 사회과학의 전형으로 여겨져 온 학문입니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부(wealth)의 생산·교환·분배 등 일련의 경제활동에 관한 자연법칙을 찾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구체적인 탐구대상은 다르지만 관찰되고 경험되는 현상들과 이성의 추론으로 자연법칙을 찾고, 과학적 접근방법을 취하여 학문적 성과를 낸다는 면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경제는 직접적으로는 사회경제 현상을 관찰대상으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을 탐구대상으로 합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심성 안에 자리잡고 있는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그분께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사회현상을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경제활동을 포함한 사회현상은 인간 행위(act)의 결과인데, 그 행위는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의지는 결국 그가 지닌 가치관을 포함한 인식의 산물이기에, 어떤 가치관으로 대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대상을 두고도 서로 다른 행동양식과 결과로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미 FTA에서 어떠한 주님의 섭리를 읽어낼 수 있을까요.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이성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눈으로 올바로 바라보고자 노력할 때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느님 외에는 절대선이 없기에 인간의 일은 상대적일 뿐 아니라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한·미 FTA도 표면적으로는 두 나라 모두의 경제적 선익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두 나라 정부 모두 협정이 발효되면 자기 나라에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자국민들에게 선전하고 있으니 어떻게 된 일일까요. 부문별로 이해득실이 있고, 결과적으로 생존권이 위협받는 계층들도 생겨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사회 양극화현상도 심화될 것으로 예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2004년 4월 1일 칠레를 시작으로 2006년 3월 2일 싱가포르, 같은 해 9월 1일에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2008년 11월에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자유무역협정을 발효시켰습니다. 2007년 5월에는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협상을 시작해 2011년 5월 한-EU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 7월 1일자로 잠정 발효됐습니다. 이 외에도 현재 캐나다·중국·일본·인도 등과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FTA는 협정 당사국 상호간뿐만 아니라 주변국과 전 세계에 미치는 효과까지 여러 측면에서 면밀하게 검토하고 나서 추진하는 게 마땅하지만 많은 경우 정치적·경제적 논리에 편승하여 소외계층을 양산하고 그들의 삶이 배제된 가운데 진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는 경제의 본질적인 의미를 훼손하는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외시장의 확보를 목적으로 한 거대경제권과의 동시다발적인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작고 경제적 여건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국가경제에는 오히려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이미 적지 않은 나라에서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중미 국가들의 경우 협정 이후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심지어 식량주권마저 훼손된 실증적 사례들이 적잖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세계 최대시장이라 할 미국의 국제정책센터가 지난 11월에 내놓은 ‘자유시장으로 인한 중미의 식량위기’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평균 40대에 달하던 중미지역의 농업용지는 2005년 미국과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이 체결된 후 2008년에는 7.4까지 곤두박질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로 인해 이 지역의 농업 자체가 붕괴돼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하면서 실업률이 급상승하고 삶의 질은 오히려 과거보다 떨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미국과 FTA를 맺는 것 자체를 부정하거나 반대할 수는 없으나 불공정 계약체결의 요소가 있다면 재고해야 합니다. 특히 먹거리의 핵심인 국내의 농축산업이 붕괴되고, 금융과 서비스 시장의 개방으로 국내의 소기업과 영세상인들을 벼랑으로 내몰아 빈곤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사회의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는 결코 하느님의 뜻도 아니며, 그리스도인이 동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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