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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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연의 드라마 속으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

백소연 레지나(가톨릭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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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치정으로 무장한 드라마들은 ‘막장’이라는 타이틀마저 불사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가고 있다. 상식과 도덕, 극적 개연성마저 파괴된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극도의 자극과 흥분뿐이지만 욕하면서 보게 된다는 힘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SBS ‘라켓소년단’은 갈 데까지 간다는 그 길을 따라가지 않고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호평까지 얻고 있으니 그 비결이 뭔지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드는 드라마이다.

라켓소년단의 주인공인 윤해강(탕준상)은 빚보증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아버지가 해남서중 배드민턴부 코치로 부임하게 되면서 땅끝마을까지 내려오게 된다. 경제적 형편 때문에 야구선수의 꿈마저 포기하고 내려온 사춘기 소년에게 서울과는 사뭇 다른 환경과 사람들이 달가울 리 없다. 게다가 단체전 출전 가능 인원을 맞추기 위해 해강은 엉겁결에 배드민턴부까지 들어가게 된다. 초등학교 때 그만둔 배드민턴을, 폼나지 않는 운동이라 무시해 왔던 배드민턴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와이파이를 깔아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 때문이라면서도, 해강은 어느새 야구보다 배드민턴에, 그곳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그리고 해강뿐만 아니라 배드민턴부의 친구들 모두 서로를 의지하며 진실한 우정 안에서 한층 더 성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비단 소년, 소녀들만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삶을 마감하기 위해 땅끝마을로 내려왔던 도시 부부는 해강이 내민 카레 냄비에 눈물을 흘린다. 낯선 땅에서 낯선 이가 건넨 호의는 마침내 부부에게 삶을 이어갈 힘이 되어 주었다. 아들의 꿈을 반대하기만 했던 우찬과 인솔의 아버지 역시 배드민턴을 향한 아이들의 노력과 열정에 감복하며 한 발 떨어져 자식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부모로 거듭나게 된다. 또한 학연과 지연의 고리 속에서 무마되었던 과거 배드민턴부의 폭력 사태는 뒤늦게나마 진실과 마주하며 불의에 맞설 용기를 낸 이들로 인해 바로 잡히게 된다. 이 역시 배드민턴을 사랑하며 어른들을 믿어 준 아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변화와 성장을 추동해낸 근본적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것은 서로 다른 존재들의 진실한 만남,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타인과의 마주침과 부딪힘, 그리고 그 어우러짐을 통해서 인간은 비로소 성장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과의 교류나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기보다는 자신의 삶과 행복, 그 자체만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점차 우세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스스로 자기의 삶을 성찰할 기회를 갖고 집단 안에서 개개인의 가치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칫 나와 비슷하거나 나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만을 유지하려 들고, 나와 다른 이들의 만남 그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태도나 문화로 연결되는 것만큼은 경계해야 한다. 낯선 이를 환대하며 그들과 융화되어 나가는 가운데 이룰 수 있는 성장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진정세를 보이는 듯싶던 코로나가 다시 극성을 부리며 방역 조치들이 속속 강화되고 있다. 다른 이와의 만남이 물리적으로도 어려워진 시기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진 우리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와 행복, 자아의 성장 역시 그 관계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기억해 둬야 할 것이다. 뜨겁고도 외로운 여름날, 라켓소년단을 만난 일이 어느 때보다 반갑고 기뻤던 이유는 이 드라마가 그 단순한 진실을 확인해 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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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7-1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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