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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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열 수사의 다리 놓기] 돌들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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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 12시,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동 해군기지 입구 로터리에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길가 천막에서 미사와 묵주기도를 마친 정선녀 공소회장도 합류했다. 자전거에서 막 내린 미국인 여성 ‘카레’가 오늘도 배낭에서 스피커를 꺼내 발언을 시작한다.

“인간띠는 평화의 섬 제주에 폭력적으로 세워진 군사기지를 반대하고, 제주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노래와 춤으로 나누는 자리입니다. (…) 세상 도처에서 전쟁으로 인해 생명과 삶의 터전을 잃으며 고통받고 있는 무고한 이들에게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소망하는 자리입니다. 깃발을 들거나 함께 모여 춤추고 노래할 수 있게 다정한 모양으로 모여주세요.”

음악과 함께 일동은 제각기 깃발 하나씩 들고 해군기지 정문 앞까지 걸어가 ‘해군기지 폐쇄하라!’, ‘전쟁을 멈춰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평화운동 단체인 ‘개척자들’의 활동가 ‘아샤’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바로 전날 “집단학살에 더는 공모하지 않겠다”며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분신한 미국인 아론 부시넬이 남긴 글을 읽었다. 스물다섯 살의 공군 현역이었던 그는 자신의 극단적인 항의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에 비하면 전혀 극단적이지 않다고 믿었다. “우리는 자문하곤 합니다. 내가 노예제 때 태어났다면 난 뭘 했을까? 짐 크로우 시대 남부에서 태어났다면? 아파르트헤이트라면? 우리나라가 집단학살을 자행했다면 난 뭘 했을까? 답은 바로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바로 그것입니다.”

잠시 묵념한 뒤에 다른 청년 ‘이상’이 한영애의 ‘조율’을 노래했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 번 해주세요. (…) 미움이 사랑으로 분노는 용서로, 고립은 위로로, 충동이 인내로 모두 함께 손잡는다면….”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의 반대운동이 뜨거웠던 강정에 해군기지가 세워지고 여러 해가 흘렀다. 일부는 떠났지만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강정 지킴이’로 남았고 잠깐 왔다가 정착하는 청년들도 계속 생겨났다. 살아있는 평화 교육의 장이 되어가는 강정마을 한복판에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도 있다.

다시 카레의 목소리가 들린다.

“더불어 온 세상 생명들이 평안히 살아갈 날이 오기를 기도하며, 그 기도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 강정댄스를 추겠습니다.”

언젠가 예수께서는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 19,40)라고 하셨다.

3월 7일은 12년 전 대규모 경찰력이 투입되고 강정 해안의 거대한 너럭바위 구럼비 발파가 시작된 날이다. 그날도 카레와 아샤, 이상과 공소회장은 해군기지 앞에 모여 연대하는 방문자들과 함께 춤을 출 것이다. 외침보다 훨씬 부드럽고 더욱 강력한 돌들의 춤을.



신한열 프란치스코(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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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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