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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빈 평화칼럼] 교황청의 중재 외교

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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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쿠바의 수교를 계기로 교황청의 중재 외교가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교황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외교적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방국들의 많은 도움과 측면 지원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움을 준 우방으로 멕시코와 유엔, 그리고 교황청을 언급했다. 특히 쿠바가 가톨릭 국가여서 교황청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중남미 섬나라 쿠바는 전체 인구(1117만 명)의 85가 가톨릭 신자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장악한 이래 현실 사회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카스트로 정권은 혁명 이후 무신론적 공산주의를 추구하면서 교회를 탄압했다. 그러나 1980년 후반부터 카스트로가 교회 존재를 인정하면서 정부와 교회와의 관계는 과거보다 상당히 원만해졌다.

교황청은 수교국인 쿠바가 외교적·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할 때마다 중재 외교로 국제적인 고립에서 탈피하도록 적극 도왔다. 2014년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각각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1년간 난항을 겪던 양국 수교 협상의 실마리가 됐다. 이후 교황은 양국 대표단을 바티칸으로 초청해 협상을 마무리하도록 했다. 오바마와 카스트로는 각각 성명을 통해 수교 중재에 힘써준 교황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드러난 것은 교황청 외교 역사상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이백만 전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의 말처럼 교황청은 세계사에 남을 만한 역사적인 일을 해놓고도 그 흔한 보도자료 한 장 내지 않는다. 따라서 교황청 외교의 성과는 대부분 ‘뒷이야기’로 회자할 뿐이다. 중재에 나선 당사국과 주변국을 철저하게 배려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다.

교황청의 외교는 복음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는 선교 활동으로 전개된다. 정의와 사랑에 기초한 보편적인 평화를 추구하고 교회와 국가 간 조화와 협력을 도모하며 기본 인권을 철저히 강조한다. 분쟁과 갈등의 조정자로 일방적 지원은 자제하고, 국제기구에서 철저하게 중립을 유지한다. 이를 위해 교황청의 외교관 후보 사제들은 1년간 지역 교회에 파견돼 선교 경험을 쌓는다.

교황청은 현재 183개국과 수교하고 있다. 종교나 이념을 떠나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이면 어느 나라와도 신중하면서도 끈질기게 외교와 선교의 다리를 놓는다. 교황청의 외교활동은 자국 이익만을 우선하는 개별 국가의 외교와는 다르다. 평화를 위한 중재 요청을 거부하지 않고 요청이 없어도 상대국을 오가며 적극 중재에 나선다.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대통령실의 설명처럼 유관부처의 긴밀한 협력과 다각적인 노력으로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힌 큰 성과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쿠바와의 수교 제안은 2000년대에 처음 이루어졌다. 이후 진보와 보수 정권 모두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이번 수교는 단기간의 성과라기보다 그동안 누적된 우리 외교의 성과이다. 더욱이 쿠바와의 수교로 북한이 외교적으로 고립될 것이란 기대는 적절하지 않다. 쿠바가 북한과 단교를 하지 않고 한국과 동시 수교국이 됐기 때문이다. 현재 남북한 동시 수교국은 북한이 수교한 159개국 가운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제외한 157개국이다.

외교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평화를 지키고 국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그 누구와도 소통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래서 외교적 수사에는 늘 상호 존중과 이해의 언어가 사용된다.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양국이 국익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거나 심대한 타격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래서 교황청도 수교의 다리를 놓는 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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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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